일상 알고리즘 뒤에 가려진 제국주의의 회로
저자는 2025년 한국 대학생의 평범한 하루-지하철에서 추천된 쇼츠 몰아 보기, 선물 받은 스타벅스 카드 활용, 바나나 하나 충동구매, 키오스크의 옵션 선택, 단톡방 N빵과 실시간 이체, 밤늦은 배달과 로켓배송, 넷플릭스의 무한 스크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보다 ‘어떻게’ 길드는지를 추적한다. 나아가 1922년 「매일신보」의 「현대 신사의 1일」 광고를 제시하며 일제가 조선의 생활양식을 은밀히 바꿨듯 오늘날의 소위 ‘스마트 시스템’ 역시 그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우리의 일상을 구조적으로 이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드러나는 용어, 물건의 이름, 소비 과정, 결제 시스템만 바뀌었을 뿐 소비자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여 지갑을 열게 하는 구조는 일제 지배하 시절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내 지갑 속에 들어온 제국주의」는 단순히 소비시스템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로마·에스파냐·네덜란드·영국·미국·중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계보’를 현재형으로 소환하여 전쟁과 정복의 시대를 지나 문화·데이터·핀테크로 재편된 21세기 권력의 작동법을 해부한다.
알람-리워드-원클릭-배송-리뷰로 이어지는 ‘일상 로그’는 어떻게 가능한가?
총과 군함 대신 플랫폼과 알고리즘, 국경 대신 네트워크가 질서를 규정하는 세계에서 ‘제국’은 더 이상 국호가 아니라 인프라이다. 앱 하나가 도시를, 결제 규격 하나가 대륙을 움직이며, 우리의 클릭과 이동은 거대 자본의 가치사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조립 부품’으로 기능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연결부위를 역사와 기술의 교차점에서 낱낱이, 그러나 친절하게 해부한다. 저자는 “오늘의 소비는 하나의 선언”이라고 말한다. 카드 한 번 긁는 행위, 바나나를 고르는 사소한 동작, 아마존 고를 떠올리며 ‘더 빠르게’에 끌리는 마음, 카카오택시로 이동하며 메신저로 택시비를 송금하는 손끝-그 모두에 권력과 침묵, 착취의 서사가 스며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프롤로그에 제시한 것처럼 일상 시퀀스를 따라 소비의 판단을 구성하는 요소(편리함, 보상, 속도, 네트워크 평판)가 어떻게 우리의 ‘자유’를 대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고는 지금의 리워드·구독·포인트·쿠폰 같은 소비 촉진 시스템이 개인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지표의 대상’으로 다루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내 지갑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이 ‘누가 내 시간을 설계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편리함과 가성비라는 유혹 뒤에 가려진 저임금·그림자 노동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할인 쿠폰과 리워드의 달콤함 뒤에는 플랜테이션 단가 압박과 계절 이주노동 문제를 겹쳐 읽을 수 있고, 수확·선별·포장·선적까지 이어지는 긴 사슬에서 가격 변동 리스크는 농가와 일용직에게 전가되기 쉽다. 패스트패션 분야에서는 ‘리드타임 2주’를 맞추기 위해 ‘샘플→소량 테스트→대량 발주’가 초단기에 반복된다. 소비자가 가성비에 미소 짓는 이 시스템에서는 단가 절삭을 위해 안전과 임금이 먼저 깎인다. 퀵커머스 및 배달 분야도 마찬가지다. 단건 수수료, 변동 보너스, 평점 알고리즘이 ‘오늘의 수입’을 좌우하는 환경에서 보험·산재 적용과 악천후 위험을 노동자가 감수해야 하며, 플랫폼의 일방조정에 소득 변동성마저 높아진다. 그뿐인가? 허울 좋은 글로벌 서비스는 시차를 뒤집은 노동으로 유지된다. 이때 감정노동과 스크립트 준수율이 충돌할 때 노동자에게는 번아웃이 누적될 따름이다. 그 밖에 원클릭 시스템의 종착지에 있는 전자폐기물과 역물류, 클라우드시스템 유지를 위한 경비·청소 등 필수 노동은 물론 전력·수자원 과용 문제는 종종 지역사회와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처럼 숨은 노동의 지도를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소비 뒤편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를 톺아본다.
이렇게 읽자
이 책은 다섯 개 ‘제국 모델’의 성공과 실패를 대조하며 제국을 작동시키는 공통원리(표준화·인프라·서사·회계·속도)를 도출한다. 1장에서는 코카콜라와 할리우드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세계 최초의 글로벌브랜드를 탄생시켰는지, 해외 보틀링 공장이 ‘미국적 생활양식’의 세계적 확산을 어떻게 견인했는지 추적한다. 2장에서는 스타벅스의 바나나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연결하여 바나나 공화국의 역사와 콜센터·아웃소싱이 만든 글로벌 노동 지형을 풀어낸다. 3장은 닷컴 버블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튤립 버블의 렌즈로 비추며, 넷스케이프·윈도95가 만든 대중 인터넷의 폭발이 거품을 남겼지만 동시에 ‘네트워크 표준’과 ‘생태계’라는 장기 자산을 남겼음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자라에서 GAFA까지-빠른 회전율의 패션 공급망과 데이터 채굴형 플랫폼이 어떻게 결합해 수요를 ‘생산’하는지, 검색·스토어·커머스·SNS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개인을 측정·세분화·유인하는지를 구체적 플로우로 안내한다. 마지막 5장은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와 QR 기반 결제혁신을 통해 ‘카드 선진국’이 아니었던 중국 시장에서 왜 모바일 지갑이 폭발했는지, 슈퍼앱이 어떻게 결제-메신저-게임-콘텐츠를 엮어 일상 OS로 변모했는지 그 과정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