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국 권력구조에 대한 전술한 주장은 정치제도에 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에 기반한 것이다. 이에 반해, 경험주의적 시각은 이론적 설명보다 경험적 사례에 의존한 주장을 제시한다. 이 시각은 미국이나 서구 국가의 정치제도를 관찰하고 이들 국가의 정치제도를 한국에 도입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 주장한다. 예컨대, 서구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한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면 한국에서도 권력 분산이 촉진되고 협치가 강화되어 정치 양극화 문제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이론적 시각에 의하면, 양당제 국가에 내각책임제가 도입되면 행정부의 권력은 오히려 강화되며, 다당제 국가에 내각책임제가 도입된다 해도 협치가 항상 촉진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 수준이 약한 정당에서 정치 엘리트가 권력 투쟁에 집중하는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다당제와 내각책임제가 조합되면,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정치세력이 이해관계에 따라 연합정부에 참여하거나 탈퇴하면서 정부형성과 실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다당제가 형성된다고 서구에서 발견되는 정당 간 정책 연합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 정당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와 가치를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정책 정당으로 재편되어야 안정적인 정당 연합이 가능해진다. 서구의 내각제 국가에서 정당 간 연합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국가가 다당 내각제를 채택해서가 아니라 정당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계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경험주의적 시각에서는 피상적으로 관찰하기 쉬운 요인이 인과적 효과를 가졌다고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이 책은 피상적인 현상 뒤에 가려진 인과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분석에 근거한 주장을 전개한다.
이 책은 지난 7년 동안 제자들이 수집해 준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필자는 이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준 제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주대학교 손웅기 학생과 서지윤 학생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회의원 후보의 신상 자료, 입법 자료와 표결 자료를 수집하고 꼼꼼하게 정리해 주었고, 그 이후 아주대학교 김동진, 박인경, 정일주 학생과 고려대학교 김승엽, 박세인, 엄준희 학생이 자료 수집 작업을 마무리했다. 특히 엄준희 학생은 국회 표결 자료를 이용해서 법안의 종류를 분류하고 의원들의 표결 성향을 노미네이트(NOMINATE) 지수로 측정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이 책의 원고를 꼼꼼히 읽고 적지 않은 비문과 오탈자를 교정해 주었다. 엄준희 학생의 탁월한 자료 처리 능력과 치밀한 교정 업무가 없었다면, 이 책은 예정대로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많은 그림과 표 및 수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험난한 편집 과정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례의 교정 작업을 신속하고 치밀하게 수행해 준 박영사의 박세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저자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았다. 충북대학교의 구본상 교수는 자신이 수집한 의원들의 이념 성향 설문조사 자료와 이들의 표결 성향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고려대학교의 강우창 교수, 박선경 교수와 국회 입법조사처의 허석재 박사는 21대 국회의원 의식조사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필자는 또한 동료 교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유익한 학문적 ·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한국연구재단의 사회과학연구(SSK) 지원사업의 공동 연구자인 고려대학교의 권혁용 교수, 김동훈 교수, 이양호 교수, 장선화 교수, 지은주 교수, 조계원 교수, 경북대학교의 강우진 교수와 아주대학교 이한수 교수와의 학문적 대화는 이 책의 집필에 유익한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가족이 베풀어 준 사랑과 희생 덕분에 학자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해지는 부모님을 뵐 때마다 마음 아픈 감사함을 느낀다. 늘 옆에서 저자를 지켜준 아내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싶다. 자신의 분야에서 늘 성실하게 일하면서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해 준 기연과 윤주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2025년 7월
문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