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문
제1장 한국사의 기준점, 험독현의 왕험성(王險城)은 어디인가?
■ 왕험성(王險城)을 찾는 일은 한사군의 위치를 바로잡는 일이다
■ 진·한대의 ‘요수라는 강’의 위치
■ 중국 고지도가 증명하는 요수의 위치
■ 요수(遼水)는 북경시의 동부 조백하(潮白河)이다
■ 패수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견해
■ 수경주가 말하는 패수는 지금의 난하이다
■ 난하는 조개가 많이 잡히던 패수(浿水)이다
■ 중국 문헌에서 찾은 험독현과 왕험성의 위치
■ 『명사(明史)』 〈지리지〉 낙정조(樂亭條)에서 찾아내다
■ 한(漢)의 사군(四郡)은 살수 남쪽에 있었다
■ 다시 그려낸 한사군 지도
제2장 - ‘조선’을 국호로 내세운 까닭?
■ 단군왕검은 왜 천하를 ‘계승’하지 못하고 ‘평정’했을까?
■ ‘조선’이라는 국호는 있어도 ‘고조선’이라는 국호는 없다
■ 조선(朝鮮)을 이루는 조족(朝族)의 동방 진출
■ 조선(朝鮮)의 선(鮮)은 선족(蘚族)을 뜻한다
■ 환웅을 파견한 다인종 국가, 환국(桓國)
■ 환웅이 이끄는 3,000의 무리는 정병(精兵)이다
■ 환웅을 파견한 목적은 흑요석 확보에 있다
■ 환웅 파견의 증거를 천부인(天符印)에서 찾다
■ 불함문화론의 근원과 오해
■ 신시(神市)는 과연 전설의 도시인가?
■ 신시(神市)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 신시는 청동기 문명 위에 세워졌다
■ 뚱시(東西) 장삿길의 변화와 상투 문화
■ 홍산(랴오허)문명의 주인, 중국이 아닌 이유
제3장 - 단군왕검은 왜 삼한으로 권한을 분담했나?
■ 진한·마한·번한은 국명이 아니라 왕권이다
■ 진한·마한·번한의 명칭은 이두식 표현이다
■ 한(韓)은 ‘동방의 유명 상표’를 뜻한다
■ 조선(朝鮮)이란 삼한관경(三韓管境)이다
■ 생산과 판매의 분리와 진한의 위상
■ 중국 사서에 나오는 마한, 진한, 변진의 개념
■ ‘대륙의 뚱시(東西) 무역로’를 이은 마한과 고구려
■ 고대 북방 유목민의 의식구조
■ 진한을 이어 간 ‘북부여 중심부’의 위치를 추정하다
■ 환인(桓仁)시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졸본성이 될 수 없다
■ 고구려의 졸본을 의무려산과 낙랑홀과 현도로 찾아내다
■ 광개토왕은 ‘마한 길’을 복원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 중국 대륙과 해상교역을 개척한 번한(변한)
■ 국제무역 시장, 연경(燕京)의 시작점은?
■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나온 백제의 22담로는?
■ 백제의 22담로는 해양 교역로를 이은 것이다
■ 소서노는 백제 이전에 ‘22담로 상단’을 운영하였다
제4장 - 진한과 마한의 왕검성과 (신) 마한의 위치는?
■ 단군왕검의 첫 도읍지 명칭은?
■ 아사달의 위치를 찾는 국내 학자들의 견해
■ 한반도 평양이 과연 단군조선의 왕검성인가?
■ 낙랑 고분이 아니라 ‘신마한(新馬韓)의 고분’이다
■ 평양 인근의 유물들이 왜 낙랑풍(樂浪風)일까?
■ 평양의 단군묘는 왕검 계열이 아닌 기씨(한왕) 계열이다
■ 봉조선(封朝鮮)의 오해와 기자조선이란 망령의 본색
■ 첫 도읍지 아사달은 지금의 차오양(朝陽)이다
■ 마한의 도읍 왕검성은 어디인가?
■ 단군왕검, 진한의 단제(임금) 연표
■ 마한왕의 연대와 진한의 단제 연대와의 비교
■ 번(변)한왕의 연대와 진한의 단제 연대와의 비교
■ 마한과 번한은 제후국인가, 혹은 진한과의 공동체인가?
제5장 - 명도전, 누구네 화폐인가?
■ 명도전 발굴과 명칭의 유래
■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인가?
■ 연나라가 제비 연(燕) 자를 쓰는 까닭
■ 제비 연(燕)은 왜 불화(灬) 변을 쓰는가?
■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는 주장
■ 명도전 사용 용도가 분명한 낭림산맥 시장
■ 명도전은 물물교환의 보조 화폐이다
■ 본점과 수집상을 잇는 솽랴오·푸순 시장
■ 서역과 직교했던 요동 반도의 어시장
■ 명도전의 명(明) 자는 발행처인가, 사용처인가?
■ 명도전 뒷면 문양에서 화폐 발행 주체를 찾다
■ 특정 지역에서 물물교환을 돕는 누구네 사폐(私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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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