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이자 뉴뮤지엄 설립자 마샤 터커의 인생활용서『뉴욕 큐레이터 분투기』. 미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이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참된 가치를 밝혀주는 인생 지침서이다. 미국 현대미술을 이끈 장본인이자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 그리고 뉴욕 최초의 동시대미술 갤러리 뉴뮤지엄의 설립자인 마샤 터커의 예술과 같은 삶을 조명하였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던 현대미술의 부흥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차별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행진했으며,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죽는 날까지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한 여성의 치열한 생애를 만나볼 수 있다.
뉴욕 큐레이터 분투기
미국 현대미술계를 이끈 여성 큐레이터
마샤 터커의 예술 같은 삶
“희망은 필요하다, 노력은 절대적이다!”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이자 뉴뮤지엄 설립자 마샤 터커의 인생활용법
미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이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참된 가치를 밝혀주는 인생 지침서!
미국 현대미술을 이끈 장본인이자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 그리고 뉴욕 최초의 동시대미술 갤러리 뉴뮤지엄의 설립자. 마샤 터커의 이름 앞에는 실로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마샤는 그런 수식어 몇 개로 정리해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멋진’ 여성이다. 삶이란 공짜로 얻는 점심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노력했고 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마샤 터커. 그녀가 없었다면 10년은 퇴보했을 미국 현대미술계를 일으킨 슈퍼우먼으로, 삶의 선배이자 조언자로서도 훌륭한 존재 의미를 가지는 이 멋진 여성의 삶이 담긴 자서전 『뉴욕 큐레이터 분투기』가 출간됐다.
1940년 변호사의 딸로 태어난 마샤 터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미적 호기심을 보였고, 자연스레 대학에서 미술과 연극을 전공했다. 이후 그녀의 삶은 예술에서 단 한 발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게 그녀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던 1960년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미술계에 투신한 마샤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냉정한 현실을 이겨내야 했다. 마샤는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길을 포기하거나 세상과 타협하는 대신 ‘희망’과 ‘노력’의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세상과 분투하기 시작했다. 허울 좋은 미술관에서 잡부나 다름없는 비서로 시작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전시를 기획하리라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난과 질병,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처 속에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1969년,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가 된 마샤 터커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동시대미술의 활로를 열기 위해 대담한 모험을 펼쳤으며, 다양한 기획 전시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냈다. 또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인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해 게릴라걸스(익명의 여성 예술가 모임.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을 신고 고릴라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공공장소에 나타나, 문화 전반에 밴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레드스타킹(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여성해방운동기구. 1969년 7월 7일 여성해방과 여성의 의식 개발, 여성의 혁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레드스타킹 선언을 발표한다)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 가리기보다는 오히려 그대로 드러내고 특화시켜 자신만의 장점으로 승화해내는 모습,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포기하거나 좌절하기에 앞서 더 나아지기 위해 분투하는 마샤의 삶은 예술보다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과의 조우
그녀의 일상이 현대미술의 흐름이 되다
1960년대 초 학생의 신분으로 집안의 가장이 된 마샤 터커는 가정과 경력을 동시에 구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고, 빌 코플리, 일명 ‘시플라이CPLY’로 알려진 화가의 집에서 개인 비서로 일하게 된다. 이 운명적인 만남은 마샤 터커, 더 나아가 미국 현대미술계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되었다. ‘화가’가 꿈이었던 마샤에게 ‘큐레이터’의 길을 보여주었고, 현대미술이라는 매력적인 분야에 눈을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빌 코플리는 르네 마그리트, 도로시아 테닝,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과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였고, 그의 집은 젊은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랑방이었다. 앤디 워홀이 지금의 앤디 워홀이 되기 한참 전, 마샤는 그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관계였고, 마르셀 뒤샹과는 고민을 상담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류에서 얻어진 안목과 식견은 마샤 터커를 휘트니 미술관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로 성장하게 했고, 대담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의 노력 없이는 어떠한 성공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마샤는 큐레이터가 된 뒤에도 부단히 공부했고,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항상 귀를 열어두었다. 초야에 묻힌 예술가들을 찾아내기 위해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마치 일 중독자처럼 일한 그녀였지만, 1976년 휘트니 미술관은 ‘너무나 낯설고 실험적인 기획으로 논란과 화제를 몰고 다닌다’는 이유로 마샤를 해고했다. 해고를 당한 그녀는 좌절하거나 주저앉는 대신 새로운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