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일본인에 의해 추적된, 김교신 선생의 생애!
『김교신의 신앙과 저항』은 복음의 진수를 정확하게 포착하였던 일제하의 한국인 김교신의 신앙의 일생을 일본 도쿄 YMCA 원장인 니이호리 구니지가 집필한 책이다. 니이호리 구니지가 발간한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김교신 선생의 넷째 딸 김정옥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한 것이다. 한국 무교회 운동의 창시자인 김교신의 신앙과 활동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김교신 선생은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의 토착적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 무교회주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무교회주의란 우치무라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 신앙 형태로서 제도화된 교회 구조를 반대하지만, 복음적 신앙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는 당시 일본의 정황과 일본에서 발간된 자료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중심은 조선 사람에게 적합한 것으로 바꾸었던 김교신의 신앙을 추적하여 숭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이 책은 일본 도쿄 YMCA 원장인 니이호리 구니지(新堀邦司)가 일제하의 한국인 김교신의 신앙과 저항의 일생을 전기의 형식으로 쓴 것으로 일본의 신교출판사(新敎出版社)에서 지난 2004년 발간되었다. 당초 니이호리 구니지는 일본의 신앙잡지 <미루토스>에 우치무라 간조가 한국에 영향을 준 인물을 연구하며 김교신의 생애를 추적하다가, 점차 김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흥미를 가지게 되어 예정과는 달리 20여 회에 걸쳐 장기간 연재하게 되었다. 그사이 한국에 다녀와 김교신의 생가터와 양정고보가 있던 곳을 방문하는 등 김교신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책의 존재를 한국에서 알게 된 김교신 선생의 넷째 딸인 김정옥은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몸소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이 책을 번역했다. 한국 기독교의 선각자 김교신 선생의 생애가 일본인에 의해 추적되고, 또 그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신순, 안중근과 같이 압제 당사자였던 일본인에 의해 존경받는 한국인 김교신
도쿄 YMCA 원장인 니이호리 구니지에 의해 조명된 한국의 기독교인 김교신의 생애를 전기 형식으로 엮었다. 일본 근대사의 거목 우치무라 간조와의 관계를 통해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인 김교신이 어떻게 참된 기독교인으로써 한 시대를 살다 갔는지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을 압제하였던 나라의 후손인 일본인에 의해 조명되고, 또한 그 정신적인 면이 높게 평가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저자인 니이호리 구니지는 2001년 한국을 방문하여 김교신 선생의 장녀인 김진술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였다. 또한 1930년대 당시 정릉리에 있었던 김교신 선생의 집터와 양정고보의 교사가 있었던 만리동을 직접 방문하는 등 김교신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이 글을 집필하였다.
야나이하라 다다오, 구로사키 고기치 등 일본 자료 인용으로 김교신에 대한 입체적 접근
이 책은 국내에서 발행된 김교신에 관한 자료들에서는 볼 수 없는, 당시 일본의 정황과 일본에서 발간된 자료를 잘 인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1940년 당시 김교신이 기획한 구로사키와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조선에서의 강연이 진행된 전후 사정을 보다 상세히 살피고 있다. 이들의 신앙잡지인 <영원한 생명>, <가신>에는 이들 각자의 일기가 실려 있어 일본 자료가 인용되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조선 강연에서의 사진 같이, 국내에서 입수할 수 없었던 사진도 실려 있다.
그리고 경성 YMCA와 황성 YMCA와의 관계와 같은, 당시 조선 총독부의 기독교 관련 정책으로 인한 이들 기관의 미묘한 관계와 같은 부분도 세밀하게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김교신이 남긴 공개 일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장 한국적인 기독교인으로 남은 김교신
김교신이 어떻게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아주 자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그 결론으로 한국의 기독자로써의 김교신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혹자가 말하는 김교신의 ‘일본적 기독교’ 색채에 대해 부정하며 저자는 “교신은 우치무라에게서 애국을 배웠지만 그 중심은 조선 사람에게 적합한 것으로 바꾸어 살았다. 거기 조선 무교회주의의 뼈대가 있다. 교신은 틀림없는 조선 무교회주의자였다”라고 평가한다. 김교신이 단지 일본의 어떤 인물과 연관이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김교신 자체로 충분히 조망될 가치가 있는 숭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된 것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