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 외교관의 도전』은 저자의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바탕으로 우리 외교의 생생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1967년 외교부관이 된 이래 2004년에 퇴직하기까지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에서 겪은 대한민국 외교의 현실과 막후의 급박한 현실을 보여준다.“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외교에 달려 있다.”
[이 책은]
강대국들의 틈바귀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보아도, 경제 강국이 된 후 각종 국제회의에서 요청받는 주도적 역할을 보아도, 우리 운명은 외교에 달려 있다.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에서 찾아낸 우리 외교의 생생한 역사.
1967년 외교부관이 된 이래 2004년에 퇴직하기까지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에서 겪은 대한민국 외교의 현실과 막후의 급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제2부 초급 외교관에서는 막 가동된 SOFA 제도의 초창기 상황과 처음으로 시행된 외무고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프랑스 대사관 근무 시절 외교부를 발칵 뒤집은 이수영 주프랑스 대사의 자살 사건을 자세히 들려준다. 북한과 카메룬의 외교 관계 수립을 저지하라는 특명을 받았으나 실패했던 대사가 세상을 져버렸다는 소문과 달리, ‘카메룬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아들을 말라리아로 잃어 재외공관 근무의 열악한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제3부 중견 외교관에서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총영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발로 뛰는 외교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우선 공관과 파키스탄 외교부 간의 접촉 사실과 본부와의 교신 내용을 열람했다. 검토 결과 내린 결론은 우리 공관이 파키스탄 외교부 내의 군부 세력에 너무 의존했다는 것이다. … 양국 간의 비정상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수교가 지연되고 있다는 나의 불만 섞인 설명을 듣더니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수교의 필요성을 정리해 다시 제출해준다면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 수교 교섭에 탄력이 붙고 있을 때인 1980년 4월 파키스탄 외교부에서 중요한 외교문서 하나를 접수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우리나라에 총영사관을 개설키로 결정했다는 것이다.”(101~102쪽)
그러나 한국에서 특사가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방문했음에도 수교는 힘들었다. “지아 대통령은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하겠다는 매우 긍정적인 발언을 해 특사 일행이 고무돼 돌아갔다. … 당시 파키스탄의 외교는 사실상 아그하 샤히 외교부 장관이 주도했다. …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 특사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정부 내 실무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피라챠 외교부 차관을 다시 만났다. 그는 파키스탄 정부가 한국과의 수교와 관련해 중국의 ‘영향력’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므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동안 모호했던 한?파 수교의 걸림돌이 중국임이 드러난 것이다.”(105~107쪽)
한편, 외교부 본부로 돌아와 SOFA 운영 업무를 하면서 상대한 미국 측 카운터파트의 무례한 태도를 보거나, 중립국 감독위소속 체코 병사의 판문점 탈출 등에서 경험한 우리나라 주권의 실종 사태를 보면 우리나라 외교의 현주소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게 된다. 특히, 1983년 중국 민항기 춘천 불시착 사건의 숨가쁜 상황을 따라가면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 증진과 수교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는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되기도 한다.
제4부 본부 국장에서는 선진국 외교부처럼 외교문서 공개를 이끌어낸 과정을 엿볼 수 있고, 정부의 정통성 홍보 대신 문화외교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문화외교국이 한가한 부서인 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다. 문화 외교는 역동적이다. … 예술인들이 수시로 문화외교국 문을 두드렸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223쪽)
제5부 공관장에서는 재외공관에서 문화외교를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케냐 대사로서 나이로비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개최해 관람객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고 한국의 이미지를 드높였다. 외환위기 이후 부임한 스위스 대사 시절에는 교민에게 국산품 장려 운동을 하고 한국 국보 전시회를 후원해 반가사유상이 첫 해외 나들이에 나서게 되었다. “「제네바 트리뷴」은 ‘한국의 혼이 취리히로 날아들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혼은 전시의 대표작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일컫는 것이었다. … 한국 국보전은 스위스 한인 사회에 신선한 문화적 충격과 긍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286~287쪽)
독일 비자 라인 사건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적 지혜를 볼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주가 지났으나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찍은 사진과 함께 외교공한을 들고 의전장을 재차 방문했다. 그녀는 사진들을 훑어보더니 외교공한에서 언급한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정> 조문에 눈길이 멈추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남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어느 누가 좋아하겠느냐만 외교관은 해야 한다. 국가의 체면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