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장기려, 그 사람』은 의사로서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다간 장기려 박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장기려의 일기뿐 아니라, 그가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 등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진짜 장기려'를 그려내고 있다. 장기려와 뜻을 함께한 사람들뿐 아니라, 그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까지 취재하여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장기려 박사 서거 20주기 기념 무선판 출간
의사로서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다간
장기려 박사의 삶과 신앙을 되새기며
《장기려, 그 사람》 무선판은 2015년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기를 맞이해 책을 더 널리 알리고자 기존 양장본에서 무선 제본으로 바꾸어 가격을 낮춘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슈바이처’, ‘사랑의 의사’,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기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평전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우리 사회의 개혁적 지식인들(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고종석, 오한숙희, 박홍규 등)을 꾸준히 인터뷰해 온 저자 지강유철은 장기려에 대한 이전의 연구서나 책들이 간과하거나 에둘러 갔던 문제들―고신교단이 선생을 조기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의사들 사이의 폭력사태, 고신대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과 교단에 저항했던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을 불러왔던 학내사태, 제도권 교회를 떠나 말년에 몸을 맡겼던 ‘종들의 모임’과 다시 받은 세례, 함석헌과 장기려의 관계, 선생의 신앙과 사상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후지이 다케시?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영향, 평양 산정현교회의 분열과 기독교의 변절 등―까지 포용력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그를 다룬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려의 일기, 노트,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 무엇보다 그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공된 장기려’가 아니라 ‘참장기려’를 그려내고 있다.
성산 장기려 (聖山 張起呂, 1911.8.14. - 1995.12.25.)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입암동에서 아버지 장운섭, 어머니 최윤경의 차남으로 출생.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양 연합기독병원 원장,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외과 교수, 부산복음병원 초대 원장, 청십자병원 원장, 부산아동병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부산대, 가톨릭대, 서울대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고,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1943) 및 대량절제술(1959)”에 성공했으며, 부산외과학회를 창립하여 의학 연구에 공적을 남겼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 간질 환자들의 모임 ‘장미회’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협동조합 ‘청십자의료보험’ 창설 등은 그가 평생 동안 무엇에 소망을 두고 어떻게 살았는지 증언해 준다. 아내 김봉숙과의 사이에 6남매를 두었으나 6·25전쟁 때 둘째아들만 데리고 월남하게 된 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가족을 그리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 국민훈장 무궁화장,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의 슈바이처’, ‘살아 있는 성자’, ‘바보 의사’, ‘작은 예수’ 등으로 불리며 온전히 이웃을 위해, 이웃과 함께 살아온 그의 묘비에는 “주님만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심층 보기】
중국 당나라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몸[體貌]과 말씨[言辯], 글씨[筆跡], 판단[文理]을 인물 평가 요소로 삼았다. 미국의 주식투자가 워런 버핏은 ‘정직한가’, ‘지적인가’, ‘에너지가 넘치는가’를 사람 평가의 기준으로 본다고 했다. 과거의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도덕적 깨끗함일까, 그가 남긴 업적일까?
성자(聖子) 장기려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할 때 별 문제없이 일생을 살아간 사람들이 꽤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소시민일 경우가 많다. 반면 업적에 우선을 두어 평가하면, 악덕 경영자가 영웅이 될 수 있고 정경유착에 따른 기회주의자가 큰 산과 같은 인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이런 두 기준에서 조화를 이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럴 때 우리는 그를 ‘성인’(聖人) 혹은 ‘성자’(聖子)라 일컫는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인도 사회를 이끌었던 간디, 빈민 봉사에 헌신한 마터 테레사가 그렇다. 동덕여대 총장을 지낸 손봉호 교수는 장기려 선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약점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 본 바도 없고, 나 스스로 발견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사도 바울 같은 분을 ‘성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충분히 장기려 박사도 성자라 부를 수 있겠다”고 증언했다.
인간(人間) 장기려
장기려(張起呂, 1911-1995).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1943) 및 대량절제술(1959)’ 성공, 북한이 수여한 최초의 박사학위 수여자(1948),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 설립(1968). 평양 연합기독병원 원장,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외과 교수, 부산복음병원 초대 원장, 청십자병원 원장……. 일일이 이력을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그는 많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이런 업적으로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가난한 사람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