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불안하고 힘겨운 당신에게
마침내 이야기가 되는 사람, 한민용이 들려주는
조용하지만 끈질긴 확신에 대하여
큰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조건과 환경이 주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민용은 남들처럼 일류대학에 가지도, 집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했지만 그저 자신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스스로에게 ‘용기 내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면서.
“이 글을 쓰느라 그때 썼던 일기를 들추고 오랫동안 찾지 않던 기억을 더듬으며 살려낸 과거는 내가 기억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의 나를 잠식하고 있던 불안과 우울, 막막함, 두려움이 다시 덮쳐오며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
한참 뒤 청력을 다시 회복할 때쯤,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인생의 이야기를 잘 골라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었는지를. 나는 세상이 갑자기 나에게 얼마나 매서웠는지, 불공평했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외롭고 가여웠는지 들려주지 않았다. 자기 연민에 빠지도록 두지 않았다. 대신 내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지혜로웠는지, 강했는지 들려주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말해주었다. (…) 나는 스스로에게 ‘용기 내는 사람, 도전하는 사람, 해내는 사람,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 이름표들은 저마다 각각의 등불이 되어 나의 삶을 이끌어주었다.” _「가장 좋은 이야기만 골라 스스로에게 들려주기를」
기자들은 세상의 이야기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고 한다. ‘이야기된다’와 ‘안 된다’. 한 번에 모든 연습과 시험의 과정을 척척 붙으며 승승장구했을 듯 보이지만, 사실 한민용은 ‘이야기되지 않는 사람’에 가까웠다. 언론고시 준비를 위한 스터디에도 줄줄이 떨어졌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사수에게 글 정말 못 쓴다는 야단을 들어가며 혼나기도 했고, 앵커로서 첫 리허설을 한 후에는 ‘잘리겠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매일 깜지를 쓰며 기사 쓰는 연습을 하고, 남들보다 더 긴 시간을 혹독하게 일하게 되더라도 누군가 현장에 가야 할 때면 손을 번쩍 들어 지원했다. 그 결과, 그는 대한민국 뉴스 역사상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 JTBC 〈뉴스룸〉 역대 최장수 주말앵커, 역대 최초 평일 여성 메인앵커 등의 굵직하고 상징적인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타이틀은 현재의 나를 과장하고, 내가 지나온 날은 축소한다”며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가는 중이다.
그는 끊임없는 열정을 강요하거나 무리해 버티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실패하는 거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야기는 내가 쌓아가는 것이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당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기다리며, 불확실한 내일 앞에 선 당신에게 조용하지만 힘있는 확신을 건넨다.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 계엄령…
현장과 뉴스룸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시대와 역사를 마주한 우리 곁의 앵커 이야기
‘죽음을 좇는 기자가 되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기자 수습 딱지를 뗀 그는 지망부서를 이렇게 적어냈다. 1지망 사회부, 2지망 사회부, 3지망 사회부. 이후로 그는 종종 ‘한기자는 누구 편이야?’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때마다 떠올리는 것은 바로 ‘내 형제의 얼굴’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가까운 형제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는 기자라는 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좇는 신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 그 답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한다. 그러니까 “뉴스 앵커요” 혹은 “기자요”라는 답은 땡- 오답이다.
“저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찾은 답은 이거다. _「사라질 직업」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것이 ‘일’이라는 점도,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옳은가를 끝없이 고민하는 직업이라는 점도 좋았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옳다고 믿게끔 설득하는 직업이어서 또 좋았다. 그러다보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도 믿게 됐다.
_「가장 좋은 이야기만 골라 스스로에게 들려주기를」
많은 뉴스와 사람들에 휩싸여 살아가는 한민용 앵커는 뉴스를 진행하는 동안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앵커로도 유명했다. 그는 가장 나쁜 앵커는 ‘예민한 앵커’라고 말한다. 나 자신보다는 타인과 세계를 향해 더 레이더를 바짝 세워야 하는 앵커가 자기 본위의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중 혼자 마음을 가다듬고 다정과 여유를 채우는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는 그가 뉴스를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지켜온 생활과 태도의 기본, 소신과 철학이 단단하게 박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는 사람, 진심으로 삶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 이 세상 모든 죽음에서 애써 눈 돌리는 대신 똑바로 마주보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요즘 저는 앵커라는 물결을 흘려보내고 또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파면을 전할 때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음을 알릴 때도 소중한 생명과 함께였습니다. 그것도 둘이나요. 태명은 ‘도토리’와 ‘감자’입니다.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저는 강물에 작은 조약돌 하나를 던집니다. 그 조약돌은 배가 부른 여자앵커가 뉴스의 문을 여는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임신한 게 알려지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므로, 두터운 외투로 불러오는 배를 감출 수 있는 겨울에 맞춰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배에 붕대를 감는 선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배 나온 여자가 TV에 나오는 것이 금기시되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배부른 여자 앵커’는 낯선 존재입니다. (…)
제가 던진 조약돌을 시청자 여러분이 불편해하시면 어쩌나 걱정도 했습니다. ‘왜 재킷을 잠그지 않느냐, 단정하지 못하다’는 등 불만을 나타내는 분도 있었지만, 그걸 덮고도 남을 만큼의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이제껏 배부른 앵커가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멋지다’ ‘다양한 모습의 여성을 TV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등등. 시청자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자연스럽게 불룩한 배를 보여주며 뉴스의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이 조약돌이 만들어낸 미약한 파문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나가며 새로운 흐름이 되어주길 기대해봅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즈음이면 아마 저는 앵커석에서 내려갈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앞으로 제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두려움과 막막함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앞에 또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저는 앵커 한민용으로서의 이야기를 흘려보내고 저다운, 저만의 다음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부디 당신도 당신만의 축복된 이야기를 꽃피우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__「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