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고, 평화를 연주하듯 이야기하다
그림책에 빠진 어른 다섯 명이 한 해 가까이 모두 스무 권의 평화 그림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가려 뽑아 다듬은 책 《직업은 어른 취미는 그림책》이 나왔다. 이 책은 2014년 보리출판사 1층 북카페에 처음 문을 연 꼬마평화도서관으로부터 시작된다. 꼬마평화도서관은 서른 권 남짓한 책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는 배짱 좋은 도서관이다. 이제까지 동네 밥집, 꽃집, 유치원, 절과 교회처럼 나라 곳곳 쉰다섯 곳에 문을 열었다. 평화를 배우고 나누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열 수 있는 꼬마평화도서관은 한 달에 한 번 평화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모임을 연다. 그런데 책을 읽지 못해 빠지는 이들을 보며 모두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나누는 ‘연주마당’이 생긴 게 모임의 시초다. 앉은 자리에서 책도 읽고 느낌도 나누어야 하니 글밥이 적은 그림책이 어울리겠다 싶어 골랐지만 읽다 보니 그림책에는 마음을 울리는 깊은 세계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저자들은 소리 내어 그림책을 읽으며 일상과 감정, 내면을 들여다보고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자기와 마주한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마법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 한의사부터 사서까지, 각자 다른 길을 걷는 다섯 사람의 만남
⟪직업은 어른 취미는 그림책⟫은 삶의 길도, 일상의 무늬도 전혀 다른 다섯 명의 어른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17년째 파주의 작은 마을 교하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권해진은 동네 환자들 이야기와 어머니와 함께한 텃밭 생활을 책으로 써낸 작가로도 활동한다. 몇십 해 동안 어른과 아이 가리지 않고 어울려 그림책을 펼치고 논 활동가 김영주는 홍천과 부천에서 ‘꼬마평화도서관’을 운영하며 그림책으로 평화를 이야기한다. 나라 곳곳에 꼬마평화도서관을 열어 평화를 나누고 있는 변택주는 특유의 결 고운 우리 말결로 된 책들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고양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 이선화는 딸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자라난 감성을 도서관의 예비 엄마들과도 나누고, 독서 모임에서 그림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잡지기자와 교사를 거쳐, 숲 해설가로 활동하며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승희는 그림책 덕분에 삶이 새롭게 열렸다고 말한다. 이 다섯 사람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고, 어른의 언어로 마음을 나눈다. 그 시간을 기록해 엮은 책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직업은 어른 취미는 그림책⟫이다. 이들은 평화에 대한 물음을 그림책에서 찾았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자연과 둘레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길, 전쟁과 기아, 폭력으로부터 되찾는 평화까지 이들이 스무 권의 그림책에서 찾아낸 평화가 알알이 빛난다.
| 그림책은 아이의 책이라고? 어른의 마음까지 두드리는 그림책의 힘
저자들은 한목소리로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림책은 짧은 문장 안에 담긴 뜻과 그림에 녹아든 결을 찬찬히 곱씹는 맛이 깊은 문학 작품이다. 그림책을 연주하다 보면 쉰 살, 예순이 넘은 어른들도 살아온 시절을 반추하고 어릴 적 마음을 떠올리며 울컥한다. 어떤 중년 남성은 연주마당에 몇 번 나온 뒤 직접 그림책을 사 들고 올 정도로 그림책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들에게 그림책은 취미를 넘어 삶의 방향을 비추는 경전 같은 존재다. 물리학자 김상욱이 “세상은 떨림으로 가득하다”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가 마음속 떨림을 울림으로, 그리고 어울림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이라 여긴다. 책을 눈으로만 읽지 않고, 귀와 몸으로 함께 느끼다 보면, 결국 마음이 열린다. 삶이 조금 느려지고, 서로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들은 말한다. “그림책에는 ‘어울려 살림’이 소복해요. 함께 읽으면 그 맛이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