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사(表辭) 1
유종화 형하고 나는 절친이다. 작당 40년이 넘었다. 그이는 일찍이 시인이었으나 시집을 낸 적이 없어 시인이 아니었고, 선생이었으나 일찍이 사표를 던져 선생이 아니었고, 작곡가였으나 히트곡이 없어 작곡가가 아니었고, 술꾼이었으나 병을 얻어 술꾼이 아니었고, 아들 귀한 집 외동이었으나 주머니를 자주 열어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 실패가 재산인 사람, 혹은 “깨끗한 어둠” 같은 사람. 그이가 평생 처음 내는 이 시집의 시들을 읽다가 보면 “가까이/ 아득하게” 아프다. 자신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여여(如如)함 때문이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와 구별이 불필요하다는 통찰을 제시하는 「당신」, 들판이라는 공간을 지금이라는 시간으로 전환해 시적인 여백을 만드는 「구절초」,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개안의 순간을 노래하는 「서설(瑞雪)」, 사소한 기쁨을 존재론적인 발견으로 상승시키는 「천국」이 나는 좋다. 이렇게 말과 마음이 텅텅 비어 있는 시들을 근래 만나보지 못했던 터라 더욱 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기어이 가득하지 못했을까”라는 자탄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통증도 한몸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아파서 답답한 통(痛)은 곧 사통팔달 통하는 통(通)이 될 것이다.
- 안도현 (시인)
●표사(表辭) 2
뒤돌아보니 형이랑 함께 보낸 세월이 까마득합니다. 30년, 반평생을 같이 했습니다.
제 노래의 가사가 막히거나 알쏭달쏭할 때 짬짬이 멋진 도움 준 거 고맙고 잊지 않을 겁니다.
형이나 나나 음악을 배우진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동하여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있으니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종화 형의 시집을 대하니 반갑고 축하드리고, 또 부럽습니다.
아참, 여러분께 살짝!
제가 아는 종화 형은 다른 이들에겐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더 이상 ‘쇠아치’는 아니더군요.
- 안치환 (가수)
지은이 ●詩作 노트
어릴 적 우리 집 대문 옆에 두엄자리가 있었습니다. 닭똥, 소똥, 돼지똥, 지푸라기 썩은 것, 개밥 남은 것 등을 내다 버린 곳이었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 쓰고 남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는데 무더기 위에는 늘 김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 못난 것들이 모여서 함께 섞여 썩어가면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분노의 표출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 김 서린 부근을 지나칠 때면 콧구멍에 확 끼쳐오는 냄새와 함께 어떤 훈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을 내고 있었던 게지요. 세상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어요. 그냥 이렇게는 사라질 수 없다는 그 몸부림.
그들은 높이가 올라갈수록, 잡것들이 더 많이 어우러질수록 진한 열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진한 열기 속에 비닐로 싼 홍어를 밀어 넣기도 했어요. 삭히는 거죠. 그렇게 삭혀진 홍어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귀한 음식으로 쓰였습니다.
버려짐 속에서, 그 끓던 분노조차 녹여버리는 발효였습니다. 그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었어요. 그렇게 속이 다 타들어 간 뒤에는 호박밭으로, 배추밭으로, 혹은 뒤뜰에 있는 감나무 아래로 이사 갔어요. 거기서 호박 모종과 어우러져 실한 호박덩이가 되기도 하고, 김치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또 감나무 뿌리에 스며들어 알 굵은 홍시가 되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던 것들. 바쁜 생활 속에서 큰 것만 좇다가 자칫 흘리고 가버린 것들. 이런 것들을 두엄자리처럼 한곳에 모아 썩히려고 합니다. 그게 삶이고 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