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걸 의원이 조부와 그 동지들이 걸었던 행적을 찾아 나서는『다시 그 경계에 서다』. 이 책은 만주와 대련, 여순, 천진, 북경에 남아 있는 유적지를 시작으로 국내에 남아 있는 유적지까지 돌아보는 역사기행이다. 이 기록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나가는 한 정치인의 솔직하고 담담한 속내를 만나본다.
“선비는 조국이 위기를 당했다면 어떠한 위협과 무력에도 굴하지 않고, 부귀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의리를 당면한 현실에 밝혀서 명예와 절조를 내세에 드리우는 사람이다.” - 심산 김창숙
국회의원 이종걸, 조부 이회영과 동지들을 찾아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걸 의원이 조부와 그 동지들이 걸었던 행적을 찾아 나섰다. 만주와 대련, 여순, 천진, 북경에 남아 있는 유적지를 시작으로 국내에 남아 있는 유적지까지 돌아보고 펴낸 역사기행이다. 이 기록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나가는 한 정치인의 솔직하고 담담한 속내가 묻어나는 책이기도 하다.
1.
정치가들이 쓴 책이라면 대부분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이 그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 교육과학위원장인 이종걸 의원이 쓴 책 《다시 그 경계에 서다》는 그런 예상을 깬다.
이 책은 저자의 정치 인생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왜 국민들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의 집권기간에 대해 가혹한 심판을 내렸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로 이 책을 시작한다. 총선에서 겨우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지만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자기반성에 빠져든다. 그런 고민 끝에 저자는 만주로 길을 떠난다. 100년 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100년 전 그해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때 많은 수의 고위 벼슬아치들과 양반 사대부들은 도리어 일제가 나라를 빼앗는데 협력했다. 그러나 저자의 조부 우당 이회영 6형제 일가는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했다. 그중 5형제가 순국하고 막내 할아버지만 살아 귀국해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성재 이시영이 그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만주와 대련, 천진, 북경을 만주로 간 이들의 집결지 추가가에서 고려혁명당과 의열단 창건지, 북경에 온 조선인이라면 한 번은 묵어갔던 우당의 거처 후고루원,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문당하고 죽어간 여순감옥과 이회영 선생이 체포된 회한의 장소 대련항까지 돌아보며 100년 전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저자는 대륙을 답사하면서 우당 형제 일가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일부 양반 사대부들도 재산을 팔아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어서 국내의 유적을 돌아보기로 결심한다. 2부에서는 나라 잃은 슬픔에 애끓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만주로 기획 망명했던 사람들, 노구에 망명한 강화와 진천의 양명학자들까지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칼날 같은 정신을 유지하며 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에는 강화학파 사람들이 집단 망명에 나섰는데, 이건창의 동생인 경재 이건승 등이 그들이었다. 충청도 진천에서는 부재 이상설을 비롯해 기당 정원하, 문원 홍승헌 같은 양명학자들이 망명길에 나렀다. 안동에는 석주 이상룡, 일송 김동삼, 백하 김대락 일가가 있었다. 전라도 구례에서는 매천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고 전북 정읍에서는 우당의 젊은 동지가 되는 구파 백정기가 망명길에 나섰다. 1910년 망명길에 오른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었지만 모두 사전 협의 끝에 길을 떠난 기획 망명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저자가 만주로 향한 이유는 조부와 그 동지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2.
100년 전 그렇게 길을 떠난 망명객들이 모인 곳은 만주의 횡도촌이란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 우리 역사에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횡도촌은 1910년 겨울, 만주를 향해 집단 망명했던 선조들의 최초 집결지였다. 현재 횡도촌은 환인 저수지로 수몰되어 있다. 횡도촌에서 몸을 추스른 사람들의 다음 목적지는 삼원포 추가가였다. 이 지역들은 한 해 전 우당 이회영과 그 동지들이 종이장수 차림으로 만주를 답사하면서 독립운동 근거지로 미리 점찍은 지역이었다. 1911년 추가가 뒤의 대고산에서 수백 명의 교포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경학사를 만든다. 그리고 경학사에서는 신흥무관학교를 만든다. 3천명 이상의 사관들을 배출했으며, 청산리 대첩의 주역이었던 신흥무관학교는 이처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로 집단 망명했던 선조들이 만든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수많은 독립군 장교와 투사들이 나왔고 일제를 공포에 빠트렸던 의열단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할머니(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에게 인사 오던 부위 이관직(1882~1972)선생을 기억한다. 할머니가 이관직 선생을 '부위'라고 부른 이유는 대한제국의 육군 장교인 보병 부위 계급에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부위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교관도 하셨다. 그렇게 저자와 신흥무관학교는 어린 시절까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냈던 부위 선생이 1960년대까지도 살아 계셨던 것이다. 해방 후 그런 분들은 왜 그렇게 소외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답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회고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3.
그렇게 추가가를 찾았던 저자는 만주 길림시로 향한다. 길림시는 고려 혁명당 창건지이자 의열단 창건지이기도 하다. 고려혁명당의 주요 멤버였던 쌍공 정이형 선생은 저자의 백부 이규창 선생의 장인이다. 감옥에서 만나 연을 맺은 사이다. 고려혁명당 창건지는 지금 길림성 건축설계원으로 변했고, 의열단 창건지는 거대한 빌딩으로 변했다. 의열단 창건지 앞이 길림감옥이었다는데 역시 거대한 건물로 변해 있었다. 빌딩 앞을 무심히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목숨 걸고 일제와 싸우기로 결심했던 선조들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지만 그 마음만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만주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의 연속이다. 이 머나먼 길을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돌아다녔던 선조들, 심지어는 차비도 없어 걸어 다녔다고 한다. 저자는 이 길을 왜 이제야 왔던가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4.
만주에서 대련으로 향한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전역을 점령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를 빠져나오는 판국인데 우당은 이듬해 66세의 노구로 만주 대련으로 향한다. 그러나 밀정의 연락을 받은 일제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고, 우당은 체포되어 순국한다.
그간 우당의 순국 장소는 대련 수상경찰서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료는 우당은 대련 수상경찰서에서 체포되어 여순감옥에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만주에 가서 장학량의 잔존부대를 비롯한 중국의 항일 부대들과 연합해 독립군을 결성해 항일 무장투쟁에 나서려는 계획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우당의 순국장소를 찾아 대련에서 다시 여순으로 향한다. 우당이 여순감옥에서 고문사하던 1932년 11월 평생 동지 단재 신채호는 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둘은 모두 아나키스트였다. 신채호는 이회영이 자신이 수감되어 있는 바로 그 감옥에서 고문사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거쳐가던 북경의 거처. 저자는 북경의 고루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우당 일가가 살았던 후고루원이란 동네를 발견한다. 불과 몇 십 채의 작은 동네이기 때문에 호수만 안다면 할아버지가 살았던 바로 그 집을 알 수 있지만 더 이상의 정보가 없다. 그나마 북경의 재개발 열풍에 따라 후고루원 자체가 헐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비단 조부의 망명거처여서가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거쳐갔던 장소가 이렇게 사라져도 좋은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우당이 젊은 아나키스트들과 공동으로 거주하던 천진의 주거지들, 극도의 배고픔에 시달리던 장소들을 걸으며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다.
5.
저자는 만주와 북경, 천진뿐만 아니라 집단 망명했던 분들의 국내 거처를 찾아 경북 안동으로, 전남 구례와 정읍으로, 충청도 진천과 강화도를 오가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의 기초를 생각한다. 100년 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생명과 모든 재산을 다 바쳤던 이들이 대한민국의 건국의 기초가 아닌가?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의 기초는 바로 이런 선조들의 독립정신과 자기희생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여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