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조각하길 거부했다. 그들이 취침용 돌-대리석과 화강암과 반암-을 주긴 했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부숴버리고는 깨진 조각들을 모아 밤에 외벽 바깥에 파묻어버렸다.
_「취침용 돌에 대한 짧은 이야기」
앤 카슨의『짧은 이야기들』을 이루는 것은 조각품이 되지 못하고 부서진 채 버려진 이러한 돌조각들이다. 그는 이 조각들을 모아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현해낸다.
예술적 도전으로서의 글쓰기:
“나는 가능한 한 당신에게 잘못되어 보이기 위해 이 문장을 쓴다”
서문에서 앤 카슨은 “쉰세 권의 낱책”에 “말해진 모든 것,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받아”썼지만 어떤 “사람들”이 와서 그 책들을 상자에 넣고 잠가버렸으며, 그들이 떠난 다음 숨겨둔 세 권의 낱책에 “놓친 부분들을 채워넣”었다고 말한다. 그가 채워넣은 기억은 자유로운 연상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시인의 의식은 쇠라에서 브리지트 바르도로, 송어에서 오비디우스로, 데생 작업에서 음악으로 다양한 대상과 주제 사이를 널뛰듯 누빈다.
앤 카슨의 작품이 지닌 그 특유의 재치는 그가 고정적인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 ‘언어의 그루터기’가 되기를 자처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이야기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고” 하며 “개연성과 필연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카슨에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지루함을 피하는 것’이다(「서문」). “나는 가능한 한 당신에게 잘못되어 보이기 위해 이 문장을 쓴다”는 시 속 화자의 말은(「피신처에 대한 짧은 이야기」) ‘개연성과 필연성’의 규칙에서 자유로운 시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시인의 선언이기도 하다.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과업이다”
앤 카슨이 「서문」에서 사용한 낱책(fascicles)이라는 단어는 또한 골격근 및 신경 섬유의 조직을 의미하기도 한다. 『짧은 이야기들』은 헐겁게 지어진 벽돌집이자 낱낱의 개체로 조직되어 있는 느슨한 신체이기도 하다. 『짧은 이야기』에서 신체는 자아와 동떨어진 익명의 물체로서 존재한다. 알 수 없는 모델의 “가느다란 팔”과(「그의 데생 실력에 대한 짧은 이야기」) 발코니의 의자마냥 ‘내버려둔’ 자궁, 물처럼 ‘들이부어’지는 얼굴이 등장한다(「아버지와의 일요일 저녁식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 “사진 속 두 손이 (…) 무릎 위에 놓인 다른 누군가의 신체 부위처럼 보이기에 이르”기도 한다 (「취침용 돌에 대한 짧은 이야기」).
현실에서 꿈속으로 떠도는 몸의 묘사 그리고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의 운송 수단에 화물처럼 실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몸의 묘사도 이어진다. 앤 카슨의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스스로의 신체로부터 유배된 듯 신체를 낯설게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이방인으로서의 체험은 앤 카슨이 이어서 출간한 두번째 작품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의 「로마의 몰락: 여행자 가이드」 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이기도 하다.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들』의 시들 속에서 생경한 신체와 풍경들을 좇다보면 그 낯선 시점에도 어느새 기이하리만치 익숙해진다. 앤 카슨은 미술관에 걸린 모나리자의 유명한 미소가 아니라 모나리자라 불린 한 여인의 감정을 바라보며(「모나리자에 대한 짧은 이야기」), 빗방울을 헤아리다가도 곧 “누구의 머리 위로도 내리고 있지 않”은 먼바다에 내리는 빗방울로 시선을 돌린다(「비에 대한 짧은 이야기」). 카슨의 상상력은 시공간을 무너뜨리고, 캔버스 너머 앉아 있는 여인을, 먼바다의 수면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여기 이곳으로 불러온다. 때문에 『짧은 이야기들』의 조각들이 널려 있는 범위는 방대하다. 학문의 세계에 몸담고 있던 시인이 처음으로 발표한 시집인 만큼, 『짧은 이야기들』은 구속적인 틀, 역사적이고 시간적인 광활한 영역으로부터 분석해 모은 발화 행위, 그리고 단편적인 생각의 배열에 공을 들인 작품집이다. 이는 읽는 이를 또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첫머리에 실린 「서문」에서 카슨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과업이다”라고 선언한다. 이는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앤 카슨을 읽는다”(데보라 란다우)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기존의 시가 가진 형태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나가는 그가 아직까지도 따르고 있는 규칙이다. 이 시집을 끝맺는 마지막 문장 “당신은 누구인가?”는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작품성의 방향을 묻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