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업에 쫄딱 망하고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그 남자, 티라노
비행기는 못 타지만 공항에서 혈중행복농도가 높아진다고 믿는 그 여자, 마리
영웅의 4대 업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 구하기, 불이 난 건물에 들어가 사람 구하기, 혜성 충돌을 막아 인류 구하기, 무고한 아이 지키기. 영웅은 늘 그랬다. 떨어지려는 힘보다, 끌어 올리려는 힘이 더 셌다.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풍덩. 신발을 벗고 물에 빠진 여자를 보고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여행 블로거로 나름 인정받는 그녀를 만나 사고처럼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아차, 3개월 뒤면 망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상황을 잊어버렸다. 어느새 5년 같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헤어지는 게 일이 됐다. 깔끔하게 헤어진 뒤 죽음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마지막 부탁을 한다.
“고향에 라디오 사연 읽어주는 친구 있잖아. 그 친구 연결해줘. 네가 내 다큐에 출연해주면 계약금 20%, 촬영 끝나면 30% 줄게. 편집까지 끝나면 나머지 50%.”
그녀의 제안은 그의 죽음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에도 충분했다. 가족과는 긴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지구에도 두 손을 흔드는 작별 인사를, 개 같은 금융 시스템에는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가겠다는 명쾌한 결론에 닿았다.
고향에 내려가 사진관을 운영하는 가족을 따라 영정사진, 동영상 촬영에 동참했다. 자칫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일 것 같았지만 시종일관 유쾌한 촬영이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차가운 마음도 녹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사소한 변화들이 생겨난다.
그것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이 그는 죽음 여행을 착실히 준비한다. 다큐 촬영은 순조로웠다. 라디오 제작 과정을 살펴보고 친구들과의 우정을 확인하는 가운데 이상한 사연이 도착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구조신호로 보인다. 더구나 피해자가 아동으로 짐작된다. 영웅의 4대 업무 중 마지막 항목. 그래, 영웅으로 죽자!
게임 사업에 망해 사고사로 위장한 마지막 여행을 계획하는 그 남자와, 비행기는 못 타지만 여행 플래너로 공항 카페에 상주하는 그 여자의 쓰담쓰담 힐링 로맨스가 총총한 밤하늘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