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유쾌한 영화 같은 작품”
-브로콜리너마저 윤덕원 강력 추천
평범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익숙한 재료와 일상의 행동이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되며
뜻밖의 세계가 펼쳐진다
《레시피 월드》
《레시피 월드》는 일상의 평범한 재료나 행동이 우연히 특정한 조합을 이룰 때 신비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독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코믹 판타지 소설이다. 《레시피 월드》 속 각각의 이야기들은 황당무계해 보이는 상상력과 하이퍼리얼리즘을 절묘하게 오가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자, 잘 들으세요. 레시피라는 건 말이에요. 그러니까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나 행동, 상황, 감정, 경험 같은 것들이 어떤 조건에 놓이거나, 혹은 우연히 조합될 때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다들 잘 모르셔서 그렇지, 이런 현상들이 주변에서 꽤 많이 일어나거든요. 예를 들어볼까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요. 1991년도에 만들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흰색 선만 밟으면서,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아시죠? 그 동요를 부르게 되면 초록불 길이가 3초 정도 짧아지거든요. 자, 이 모든 상황이 우연히 조합될 확률은 낮습니다만, 낮긴 해도 제로는 아니고 가끔 문제적인 레시피가 발생하기도 해요.”- 204쪽
〈방귀 전사 볼 빨간〉은 방귀와 여고생,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이 즐거움을 준다. 설화 ‘방귀쟁이 며느리’의 후손인 여고생 홍은 방귀 능력자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고 평범한 여고생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만, 위험에 처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방아일체’의 경지를 향한 수련을 시작한다. 부끄러움이 많아 볼이 금세 빨개지는 홍과 거인이 되고 싶은 악당, 그를 돕는 주변 인물들의 엉뚱한 매력이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깜박이는 쌍둥이 엄마〉는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위로하는 ‘바닐라 아이스 라테’ 같은 작품이다. 고장 난 형광등처럼 자신이 깜박거리고 있다고 느끼는 슬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아도 별다른 차도가 없던 어느 날, 슬기의 하소연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에게 ‘깜박이는’ 자신을 보여주려다 오히려 남편을 사라지게 한다. 당황한 슬기를 찾아온 의문의 두 사람과 함께 슬기는 사라진 남편을 데려오기 위한 레시피를 찾아 나선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임에도 스펙터클한 매력이 넘치는 ‘가내모험극’이다.
갑작스럽게 창궐한 좀비 떼에 얼떨결에 맞서게 된 이들의 마지막 날을 다룬 〈살아있는 오이들의 밤〉은 오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오이 헤이터들을 위한 유쾌한 선물이다.
매일 같은 자리에 모여 있는 저 비둘기들이 정말 비둘기가 맞을까?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서브웨이 샌드위치 재료 조합에 수상한 비밀이 있진 않을까? 맨홀 뚜껑의 복잡한 무늬가 어째 보물 지도처럼 보이는데? 야외 운동기구에 진심이신 저 어르신은 어쩌면 접선을 기다리는 비밀 요원?
참 쓸데없다 싶은 상상을 이어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평범한 일상들이 우연히 낮은 확률로 조합되어 신비한 일을 발생시킨다면? 그런 조합을 ‘레시피’라고 부른다면?
- 작가의 말 중에서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나요?
나는 단연코 훌륭한 이야기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 브로콜리너마저 윤덕원 추천사 중에서
영화 〈걷기왕〉, 〈오목소녀〉로 어딘가 부족한 이들의 성장담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포착해 온 연출자 백승화의 시선이 소설로 옮겨왔다. 작가는 일상의 작은 디테일까지 예리하게 포착해, 황당하면서도 기발한 상상의 세계를 마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풀어냈다. 여기에 특유의 엉뚱하고 능청스러운 유머, 그리고 캐릭터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더해져 독자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들은 히어로물의 장엄함 대신 친구들을 구하러 가며 챙기는 군고구마 같은 따뜻함을 얻고, 밥솥이 되어버린 남편의 ‘나물솥밥’이란 간절한 외침에서 웃음과 함께 은근한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감독으로 다져온 감각을 바탕으로, 작가는 영화적 리듬을 글 속에 담아냈다.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한 문장은 독자에게 스크린 대신 텍스트를 통해 ‘읽는 영화’라 할 만한 몰입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슬기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내 남편이 가전제품? 믿을 수 없었다. 전기밥솥을 향해 다가간 슬기는 뚜껑에 대고 조심히 말했다.
“여, 여보?”
“잡곡 쾌속!”
헐.
“정말 당신이라면… 그래, 나물솥밥이라고 해봐.”
“나물솥밥!”
슬기가 잠깐 휘청거렸다. ”- 203쪽
마구잡이로 웃기다가
마침내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위로와 응원의 레시피
《레시피 월드》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를 실컷 웃기다가 어느 순간 뭉클한 감동으로 이끄는 절묘한 균형감이다. 방귀 전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홍이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가장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슬기가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삶은 자주 고장 나고, 우리 모두는 늘 어설프지만 그런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거창한 영웅담이 아닌 아주 작은 용기,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사소한 위로와 따뜻한 체온이다. 작가는 웃음과 다정함이 뒤섞인 이 감정을 유쾌하게 전달하며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한참을 웃다가도 어느새 코끝이 시큰해지는 《레시피 월드》는 당신의 일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