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문 변호사 강도희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폭력적인 독재자였던 아버지와 순응하기만 해온 어머니 사이에서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자라, 감정 무표정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후배였던 남자친구는 그녀의 아픔을 나눌 자신이 없다고 떠나가기도 했다.
우연히 방문한 수족관에서 신비로운 황금빛 인면어와 접촉하면서, 그녀의 삶이 뒤바뀐다. 강도희를 찾는 의뢰인들은 제각기 가정폭력과 이혼, 양육권과 양육비 문제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될 때마다 강도희를 뒤덮고 있는 비늘도 한 꺼풀 벗겨져 나간다.
상처를 입고 피 흘리는 건 순간이지만, 어설프게 아문 상처에 딱지가 앉고 그 후유증이 비늘처럼 부서져 날리는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폭력과 고통의 기억이 사람을 오래오래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받던 사람이 스스로의 결핍을 극복하면서 자신을 신뢰하게 되고, 그로 인해 타인을 치유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이 언젠가는 비늘이 완전히 떨어져 보송하고 단단한 살갗으로 거친 세상 속을 나아가게 되기를 독자도 같이 기도하게 될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비늘’과 ‘황금빛 인면어’의 형이상학이다. ‘비늘’의 중층적-다층적 의미 부여를 통해, 소설 장면 장면마다에서 독자들은 ‘동고로서의 연민’이라는 감정을 요청받는다. 요청이므로 ‘요청의 형이상학’이다. 『비늘』은 사회적 소설을 넘어 ‘형이상학 소설’이 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가능성이다. 개인 강도희의 구원, 그리고 강도희에 의해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난 자들의 구원이다. 동고적 연민은 과도해야 하고, 우리는 되도록 많이, 과도(過度)하게, 그것에 합류해야 한다.
- 박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