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담, 「없는 셈 치고」
〈걷기〉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맨발 걷기를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었다. 요즘 집 근처 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분들을 여럿 마주치곤 했는데, 장년이나 노년에 접어든 여성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나는 맨발 걷기를 하지 않지만)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며 맨발 걷기의 효능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초고 제목은 〈맨발 걷기〉였고, 맨발 걷기에 대한 묘사가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형태로 초고가 나왔는데,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맨발 걷기라는 행위보다는 소설 속 인물이 맨발 걷기에 집착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정을 거쳤다.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서 〈없는 셈 치고〉 지우고 싶은 존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성해나, 「후보(後步)」
인생의 뒤안길로 물러난 이들을 흔히 퇴보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들이 퇴보가 아닌 후보(後步)하고 있다고 고쳐 말하고 싶다. 앞이 아닌 뒤로, 다음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라고. 뒤를 돌아보며 삶을 새로이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후보하는 이를 소설에 담고 싶었다. 주인공 안드레아가 사랑하는 재즈 역시 〈쇠락한 장르〉로 불리지만 재즈 역시 쇠락이 아닌, 계승의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래서 스탠다드 재즈를 새롭게 변주한 곡을 들으면 옛 세대와 현세대가 함께 산책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뒤로 걷는 산책.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주혜, 「유월이니까」
지난겨울 많이 아팠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이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킬까 두려워 무조건 몸을 움직였다. 동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공원을 찾아갔다. 이사한 지 2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원이었다. 우려와 달리 한밤의 공원은 몹시 붐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걷고 뛰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슬며시 끼어들어 함께 걸었다. 늘 혼자 걸었다. 걷는 동안 겨울이 봄으로 이어졌다. 밤인데도 나무에 피어나는 꽃들이 등불처럼 환했다. 내 옆을 스쳐 달리던 여자가 친구에게 말했다. 아유, 숨차 죽겠네. 친구가 말했다. 살려고 달리는데 죽으면 어떡해! 두 여자가 까르르 웃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시공에서 많은 이가 죽겠으니 살려고 걷고 뛰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어 갈 때 친구가 연락을 주었다. 집 근처 왕릉에 보리수가 꽃을 피웠다고. 그 향이 기가 막힌다고. 당장 그곳으로 갔다. 함께 무덤가를 서성이며 보리수꽃을 보고 향을 맡았다. 죽음 곁에 피어난 삶이 너무 화사해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졌으나, 그만큼 살고 싶어졌다.
임선우, 「유령 개 산책하기」
걷기를 주제로 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싶었다. 걷기를 환희로 느끼는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개보다 더 적합한 존재는 없을 테니까.
임현, 「느리게 흩어지기」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나의 여생은 여행보다는 산책 같기를 바란다. 예상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단조롭고 일정하게, 익숙하면서도 무심하게 매일매일을 살고 싶다. 그게 꽤나 이루기 어려운 계획이라는 것도 잘 안다. 대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볼 수는 있지 않을까. 동네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모르지만 눈에 익은 사람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에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읽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