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10.26의 초상》은 한반도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단 하나의 날짜, 10월 26일을 중심축으로 한 시간 미스터리 서사다.
1597년의 명량해전, 1909년의 안중근 의거, 1979년의 10.26 사태.
이 세 사건은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 ‘사실’이지만, 이 소설은 그 틈과 이면,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상 가능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흐르는 역사의 시간 속에 떨어진다.
그리고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도우려는 작은 선택들이 서서히 거대한 그림 속 조각처럼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독자를 혼란스럽고 의도적으로 불친절한 시간 안으로 밀어 넣는다.
1979년의 정보요원, 하얼빈의 성당, 울돌목의 난파선.
처음에 무관해 보이던 인물과 장면들이 시간의 조류를 타고 교차하면서 독자는 점차 세 겹의 시간, 세 겹의 진실, 그리고 한 장의 편지에 얽힌 거대한 설계도를 마주하게 된다.
《10.26의 초상》은 단순한 타임슬립 소설이 아니다.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는 없다.
하지만 현재는 분명 과거를 도와 흘러간다.
그 행위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지만, 독자의 인식과 감정에는 미묘한 파문을 남긴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든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순신, 안중근, 박정희라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하나의 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서사적 상상력을 통해, 한편으로는 스릴러이자, 한편으로는 역사철학적 탐색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절제된 문체와 끊임없이 반전되는 구조,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정점은 이 소설이 단순히 흥미 위주로 끝나지 않도록 한다.
《10.26의 초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26일의 기억을 뒤흔드는 작품이 아니다.
그 기억 사이사이,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여백’에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