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엉뚱하면서도 따스한 서정 그리고 싱싱한 상상력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는 첫 동시집 『지금은 공사 중』(2007)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박선미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박선미 시인의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시를 써온 시인의 맑고 섬세한 감수성이 여기저기서 빛난다.
박선미 시인의 동시는 일관되게 어린이들의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를 시화한 특성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의 생활을 일기 쓰듯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박선미 시인의 동시가 어떤 특별한 시적 기교 없이도 미소를 짓게 하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수긍의 힘을 지닌 것은 그런 까닭이다. 두 번째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에도 어린이들의 일상적 체험이 담겨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동시집은 어린이의 눈높이를 가진 "나"의 일상 체험이나 생각의 깊이에서 첫 동시집과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려내고 있는 동시집 속의 작품들은 때론 엉뚱하고 재미있지만 아이들에게 가족과 이웃, 세상에 대한 순수하고 따스한 사랑을 품게 해준다. 시인의 자유스런 상상력과 지혜로운 언어는,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랑과 깊고 진지한 마음을 갖게 해줄 것이다.
2. 어린이의 눈높이로 바라본 이웃과 가족간의 사랑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는 어린이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의 깊이에 주목한다. 가정이나 교실에서 일어난 일, 이웃이나 자연 생태에 대해 그들이 품은 생각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 가족이나 이웃간의 관계성을 진지하게 살피고 있다. 그런 후 시인은 가족과 공동체라는 가장 친밀한 그들의 생활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성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며 그들에게 숨겨진 희망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학교 앞 오락실에 붙어앉아 놀다가 엄마에게 끌려갔던 부끄러운 일에서부터 숨기고 싶은 이성에 대한 관심에까지, 마치 일기를 쓰듯 가식 없이 털어놓고 있다.
산 속에서/길을 잃어도/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지./해님을 많이 보려고 길어진 쪽/ 그 쪽이 남쪽이랬지.//내 마음에/나이테가 있다면/그 쪽은 동쪽일 거야.//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거기 앉아 있거든/동쪽 창가/앞에서 세 번째 자리
--「나이테」 전문
「나이테」는 어린이의 속내를 고백하고 있는 동시다. 나무를 가로로 자르면 짙은 색의 동심원이나 타원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를 나이테라고 부른다. 나이테는 연중 날씨가 일정하여 나무의 생장속도에 큰 차이가 없는 더운 열대지방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잘 나타난다. 그 나이테는 항상 가운데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 모양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나 환경 등의 조건에 따라 너비가 달라져서 타원 모양이 되기도 한다. 이 동시는 이러한 나이테의 특성을 끌어들여 자기가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 대한 마음 향함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내 마음의 나이테는 동심원 모양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가 앉아 있는 “동쪽 창가/앞에서 세 번째 자리”를 향한 타원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어린이가 숨기고 있는 속내를 진지하게 털어놓는 표현 방식은 첫 동시집에서 잘 보여준 박선미 시인의 시적 특성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동시집에서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그 관계성은 내 동생,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 원리에 기초되어 있다. 가족 원리는 우리나라 전통사회를 강력히 유지한 원리이자 전통사회를 구성한 핵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는 가족간의 유대와 갈등을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그 속에 얼비친 사랑의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집 동생은/누나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데/내 동생은 맨날 대들고//다른 집 동생은/입던 옷 물려받는다는데/내 동생은 맨날 새 옷만 입고//그래서/동생 없는 하정이에게/공짜로 가져가라 했는데//깜빡 잊고/숙제 공책 안 가져온 날/호랑이 선생님 생각만 해도/가슴이 두근거리는데//빼꼼 열린 교실 문 사이로/낯익은 주근깨 얼굴/“선생님, …이거 우리 누나 숙제장…”/얼마나 뛰어왔는지/볼이 빨갛다.//하정아, 그 말 취소야
--「하정아, 그 말 취소야」 전문
「하정아, 그 말 취소야」는 가족간 갈등과 유대를 가장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인 동생과의 관계를 잘 보여준 동시다. 이 동시에서 도드라지는 의미는 “내 동생은 맨날”이라는 시어에 있다. ‘맨날’이라는 말은 얄밉다는 뜻을 아주 강하게 강조하면서도 그 속에 사랑스럽다는 의미가 내포해 있기 때문이다. 이 동시집에 의하면, 집은 ‘맨날’ 동생과 토닥거리는 장소이고, 학교는 ‘사고다발지역’이지만, 그 속에서 가족이나 친구간에 도타운 정을 쌓아간다. 그만큼 어린이들에게 집과 학교는 자연스럽게 갈등을 표출하고, 또 해소하는 장소인 것이다.
한편 이 동시집의 시적 의미는 바로 대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아버지, 어머니, 내 동생이라는 핵가족 관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가족 관계로 확대되면서 가족간의 사랑을 새롭게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 계신/할머니가/꽁꽁 묶어서 보내온 택배상자//풀기도 전에/참기름 냄새 먼저 나와/“너거들 잘 있었나?”/솔솔 안부를 묻고//곱게 빻은 고춧가루/잘 말린 무말랭이/봉지 봉지/앉은뱅이 걸음으로 나와/“요건, 고추장 담아 묵고, 요건 밑반찬하고.”/집안 가득 할머니 목소리/풀어놓는다.//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김복남/우리 할머니/택배로 오셨다.
--「택배」 전문
누구나 간혹 집에서 택배상자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보내주신 물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거들 잘 있었나?” 하며 안부를 묻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할 것이다.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요건, 고추장 담아 묵고, 요건 밑반찬하고”, 일일이 그 용도를 자상하게 일러주시는 할머니를 직접 대하듯 정겨울 것이다. 그런 친근감은 할머니가 택배로 물건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는 할머니가 직접 택배로 오신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할머니의 온정을 택배로 비유하여 가족간 사랑의 유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이 동시는 무엇보다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가 정겨움을 더해주고 있다.
저녁 8시만 되면/텔레비전 연속극 속으로/들어가시는/우리 할머니//“할머니, 볼륨 좀 줄이세요.”/서울서 내려온 사촌동생 말은/들은 척 만 척/“할매, 소리 좀 줄이라카이.”/내가 하는 말에는/“오냐 오냐.”//우리 할머니 귀는/사투리 귀/내 말만 알아듣는/사투리 귀
--「할머니 귀」 전문
「할머니 귀」는 사투리에 묻어난 할머니 삶의 연민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동시다. 할머니 귀가 아무리 어두워도 귀에 익은 내 사투리는 잘 알아듣는다. 말의 뜻이란 말귀에는 ‘남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는 슬기’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사촌동생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는 할머니 말귀는 낯선 서울 말씨 때문이 아니다. 교감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늘 “저녁 8시만 되면/텔레비전 연속극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자신의 삶과 연속극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할머니에 대한 삶의 연민도 함께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그 빈자리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틀니를 빼면/호물호물/쪼그라드는 할머니 입//“할머니, 이상해요./얼른 틀니 끼세요.”/철없는 동생의 말에//“그려. 흉하쟈?/있을 땐 몰라도/없으면 표나는 게 세상살이인겨.”//할아버지 계실 땐 몰랐는데/할아버지 돌아가신 지금/쓸쓸해 보이는 저 자리//틀니를 빼면/호물호물/쪼그라드는 입 같은/할아버지 빈자리
--「빈자리」 전문
「빈자리」는 할머니와 동생의 대화를 통해 할머니에 대한 연민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동시이다. 그것은 “그려. 흉하쟈?/있을 땐 몰라도/없으면 표나는 게 세상살이인겨”라고 한 할머니의 반문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화자는 할아버지 가신 ‘빈자리’를 “틀니를 빼면/호물호물/쪼그라드는” 할머니 입으로 비유하면서 그런 연민을 드러낸다. 이같이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는 대가족의 범주 안에서 일어나는 유대와 갈등 속에 얼비친 사랑을 통해 가족간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동시집에서 보여준 사랑의 성찰이 이웃의 가정으로 확대되면 그 연민은 더욱 깊어진다. 한 예로 「들꽃 학습원」에서 보듯, “술만 취하면 때리는 아빠 때문에/집나간 엄마 보고 싶은/영준이”와 같은 이웃들이 있다. 가족간의 유대는 간혹 아버지의 폭력이나 가출한 어머니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하고, 실직이나 가난 등으로 시련과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런 가족의 우울한 풍경은 분명 우리 사회의 냉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박선미 시인의 연민은 가슴 떨리는 희망의 꿈을 꾸게 한다.
동시집 『불법주차한 내 엉덩이』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란 공짜 없는 관계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라는 사실을 아프게 인지시키면서 가족과 이웃간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동시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동시집 속에서 박선미 시인의 불우한 이웃에 대한 애틋한 연민과 따뜻한 사랑의 마음도 함께 엿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