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강을 건너 새가 되어 돌아온 사랑, 어른이 되어야 읽히는 동화 한 편”
문학소녀 ‘잎새’와 천문학도 ‘박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나눈 별 사진 하나가 계기가 되어, 깊은 상처를 가진 두 청춘이 서로의 세계에 스며드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동화처럼 시작된다. 하지만 온전한 동화가 되지는 않는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일상의 균열을 겪는 잎새, 어린 시절 화재로 부모를 잃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박하. 둘은 서로의 아픔을 은폐하지 않고 마주하며, 상처를 중심에 둔 연대를 통해 사랑을 키워간다.
작품은 이들의 사랑이 절정에 달했을 때 비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박하가 심정지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이어 잎새의 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랑과 가족, 자신을 지탱하던 모든 축이 사라진 순간, 주인공은 절망의 낭떠러지 앞에 선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뚜렷하게 방향을 바꾼다. 죽음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환상으로 해석하고 치유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기적처럼 펼쳐지는 ‘하늘나라 빌리지’는 그 상상의 공간이다.
단순한 이상향만은 아닌 그곳에는 잎새의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있고, 박하의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각각 향기 수풀림, 열성 377 식물원, 영혼 통신사, 유기견 펫숍 등을 운영하며 잎새의 마음을 위로하고 안아준다. 이 세계의 설정은 매우 창의적이며, 천국의 구체적인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잎새는 그곳에서 향기욕을 하며 절망의 잔여물을 증발시키고, 수백 개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를 보며 살아갈 의미를 되새긴다. 이 상상의 여행은 단지 환상에 머물지 않고,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지속성, 그리고 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할 애도의 시간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전한다.
작품의 문장은 유려하고 감성적이다. 별과 계절, 식물과 향기, 동물과 별자리 같은 자연의 상징들이 삶과 죽음, 사랑과 기억, 그리고 회복을 매개하는 이미지로 기능하며, 독자에게 촘촘한 정서적 공명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이 모든 슬픔의 과정을 한 편의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감싸 안는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읽히는 이야기. ‘이별’이라는 단어의 어원조차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박하 잎새의 향기』는 죽음의 불가피함 앞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자,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통해 어떻게 다시 꿈꾸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누구나 마음에 품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이 소설은 단지 한 편의 픽션이 아니라, 그리움의 가장 깊은 층에 조용히 닿는 위로가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에도 별 하나 피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