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 제2소설집 「악인과 담장 위 그녀와의 사랑」 평설〉
인간의 두 양상(Persona와 Shadow)을 드러낸 소설 세계
- 「악인과 담장 위 그녀와의 사랑」 소설집에 나타난
- 강소이(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1. 머리말
권영재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가 내렸네」에 나타난 현실 비판과 삶에 대한 통찰을 살펴본 바 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악인과 담장 위 그녀와의 사랑」도 첫 번째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자신의 체험기인데, 어린 시절 추억, 어린 시절에 들은 이야기, 청십자, 적십자병원에 대한 체험기, 대구 지하철 참사, 환갑 잔치와 샌프란시스코, 중국(칭다오), 일본(신주쿠)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도 소설집 안에 들어있다.
제1소설집 평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행기는 시적 산문에 가까운 소설이다. 소설 외에 글들인데 병원 생활에 대한 소회 - 정신과 병동 회진 이야기 등, 현실 비판적인 칼럼 등은 fiction이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소설 문학에 해당하는 〈우리 동네 사람들〉, 〈악인과 담장 위 그녀와의 사랑〉에 대한 것만 언급하기로 한다. 물론 권영재 님의 여행 체험기는 여정 - 견문 - 감상이 잘 표현되어 있기에, 마치 그 여행지에 와있는 듯한 실감이 들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임을 밝히고 넘어간다.
2. 작품 들여다보기
1) 불교적 세계관
〈우리 동네 사람들〉을 중심으로 권영재 님의 글에는 어떤 성격의 글에서도, 불교적인 세계관이 녹아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하프 돔에서 “탐진치를 훌훌 털고 심신을 세탁하고 가야겠다고 다짐한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또한 〈원추리꽃〉에서도 “식물이라도 산목숨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게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이다”라는 표현도 그러하다. 불교의 무외시無畏施를 주제로 하는 단편 소설 〈우리 동네 사람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주지 스님과 선녀 보살(무당), 보신탕집 주인 등이다. “서방정토”, “승속불이僧俗不二”, “서방정토”, “옴마니반메흠”, “동진출가童眞出家”, “보시報施”, “선인선과善人善果”라는 불교 용어가 나온다. 파계했던 엘리트 코스를 거친 주지 스님(불교의 법계를 모두 어기고 아이까지 낳음)과 선녀 보살(수녀였던 젬마는 원장 신부와 싸우고 정신병원에 보내졌다가 환속하여 무당이 됨) 등이 보신탕집에 모인다. 각자 걸어온 삶의 길이 굽이굽이 먹구름과 장대비가 내린 이들이었다. 억울한 일을 겪었노라고 본인들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다. 인물, 사건, 배경이 선명하고 스토리가 분명하다. 소설이 갖추어야 할 구성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발단 - 전개 -위기 - 절정 - 결말의 구성 단계도 잘 갖춘 흥미로운 소설이다. 불교와 천주교 성직자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소설 구성의 3요소 중 하나인 “인물”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의 소설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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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C. jung(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이며 심리학자이다. 정신의학자였던 그는 집단 무의식과 콤플렉스 개념을 도입한 바 있다. 모든 인간은 겉으로 내보이는 가면(persona)과 가면 뒤에 숨겨진 내면의 그림자(shower)가 있다는 주장이다.
다)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체면) - 가면(persona) 등을 말한다. 반면, 인간에게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내면의 욕구 리비도(libido) 등이 인간의 내면의 그림자(shower)가 있다고 보는 개념이다. 권영재 님의 소설 〈우리 동네 사람들〉은 페르소나와 쉐도우를 잘 드러낸 훌륭한 소설이라고 하겠다.
라) 겉으로 근엄하고 정숙한 성직자 - 주지 스님이 술과 고기, 성욕대로 살아 파계한 이야기와 임질에 걸려 수술한 이야기가 소설에서 그려진다. “강아지를 나중에 드리겠다”라고 했던 수녀의 말에 보신탕을 기다렸던 원장 신부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를 지키지 않아 분노에 차 있던 신부가 공소에 다녀오다가 차량을 발로 차며 수녀와 싸운 이야기 - 병원 노조 이야기도 이 이야기에 섞여 있지만, 젬마 수녀를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수녀원을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젬마 수녀는 환속하여 수녀로서의 수도자의 길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수녀와 무당이라는 극단적인 신분의 선택은 소설이기 때문에 fiction으로만 그려질 수 있다. 있을 수 있는 일fiction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꾸며낸 허구 문학이 소설이지만, 수녀와 무당 신분의 탈바꿈은 독자들의 정서에 슬픔을 선사하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젬마 수녀가 수도자로서 하느님을 따르던 이였다면, 무당이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보신탕 주인은 이들의 슬픈 과거사를 듣고 나서, “수육 한 접시”와 “진국”을 들고나와 “과거를 잊고 현재에 충실 하입시더”라고 한다. 보신탕 보시 - “보신탕집 주인은 오늘의 이 보시로 서방정토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구절로 소설을 맺는다.
마) 보신탕집에 모여 놀음판을 벌였던 사람들(주지 스님, 선녀 보살 등...)의 이야기다. [“빨리 패 돌리라” 자본주의는 돈이 신이다.]라고 스님의 목소리가 우렁찼던 곳에서 “무외시無畏施”를 주제를 도출해 내고 있다. 무외시는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행위를 말한다. 수육 한 접시와 진국을 나누는 물질적 나눔財施으로 서방정토를 얻으리라는 밝은 귀결을 보인다. 돈을 따고 싶어 놀음판에 모인 이들 - 과거사를 털어놓음 - 물외시를 제시하는 작가의 작가 의식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뭔가 인간의 뒷골목 - 인간 양상의 그림자(이면)를 보며 씁쓸했던 소설의 전체적인 정서가 수육 한 접시와 진국의 보시 - 무지개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2) (Persona와 Shadow)의 소설 〈 악인과 담장 위 그녀와의 사랑 〉
이 소설은 평범한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환상, 망상 속에 그녀를 늘 끌어안고 사는 이의 이야기다. 소설의 발상이 독특하다. 권영재 님이 정신과精神科 의사의 경력이 많으므로, 어떤 환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설정하여 상상력의 옷을 입혀 소설로 작품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작된 있음 직한 허구의 세계를 작품화한 서사敍事 문학이다. 서사문학은 스토리의 전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문학이다.
그런데, 소설 서두에서 결미까지 소설 전체에 “그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담장 위를 걷고 있기도 하고, 주인공이 동네 사람들에게 구타당할 때도 그녀의 “큰 눈”이 보였고,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경찰관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들었을 때도 “참아, 참아”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 먼 곳, 둑에 개나리꽃 핀 강둑에서도 그녀는 걷고 있었다. 절벽에도 그녀가 서 있다. 주인공은 그녀를 향해 바다로 돌진한다. 그녀가 서 있는 담장 위라든지, 둑 위라든지, 절벽 위라든지, 그녀가 서 있는 공간 묘사나 그녀의 차림새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한 장의 수채화나 유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를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다. 한결같이 요염하고 매력적인 모습이다. 권영재 님의 필력은, 글을 오랫동안 써온 오랜 내공이 느껴진다. 범상하지 않은 문장력이다.
이 소설을 하나의 큰 틀로 본다면, “하얀 색깔이 칠해진 담장 위를 걷고 있는 그녀”로 시작하여, 긴 부츠에 청바지를 입은 마지막 장면까지 그녀는 요염하고 애교 있게 묘사된다. 그리고 그녀는 안내하듯 왼손이 바다 쪽을 향해 있었다고 했다. 해서 주인공은 바다를 향해, 그녀를 향해 돌진한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그녀의 눈동자와 목소리. 이것은 환상, 환시, 환청일 수도 있다.
주인공의 내면에서 그려내고 있는 “여인” 일 수도 있으나, 내면에서 울리는 주인공의 다른 자아 - 흔히 말하는, 인간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자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긍정과 부정 즉 선악이 존재한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의 양가감정 - 자선慈善을 베풀까 말까? 바다로 여행을 갈까 말까? 긍정과 부정의 양면처럼, 이성과 감정, 체면과 리비도, 체면과 욕망, 이타利他와 이기심利己心은 분리될 수 없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그린 소설이라 하겠다. “내 그림자는 왜 당신을 벗어나지 못할까?” “천주님께 수없이 질문”했다고 했다. 한쪽 어깨에서는 천사가 선을 행하라고 속삭이고, 한쪽 어깨에서는 악마가 욕심대로 행하라고 속삭이는 이치라고 하겠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천사와 악마의 양대 산맥 중에 어느 쪽을 택하는가가 인간의 자유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그녀“의 손짓 안내를 따라 자멸한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인다.
큰 틀로 보면 이 소설은 정신분석학적인 심리 소설이다. 그리고 그 큰 틀 속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액자 소설의 구성을 보이고 있다. 지나갈 때마다 구정물을 튀겼던 가게 주인(구의원)과의 다툼 - 경찰 조사에서 구의원의 불법적인 행동은 훈방 조치 되고, 전과자였던 주인공은 처벌받는다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고발 소설의 면모를 보인다. 진짜 악인惡人과 진짜 선인善人에 대한 사유를 하게 하는 깊이 있는 소설이다. 이해가 쉽지만은 않은 다중 채널을 채택한 심도 있는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구상해 내는 것이 결코 용이 한, 일은 아닐 터인데, 작가의 상상력과 작품 구상력이 우수한 작품이다.
〈세렝게티의 밤〉, 〈산골 저수지〉와 같은 작품도 훌륭한 소설의 요소를 지닌 뛰어난 작품이지만, 작품 평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3. 맺음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권영재 님의 소설은 불교적인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개천의 추억〉에서 “베드로 어머니와 파 뿌리” 이야기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 고향은 지옥이었을까? 사람들은 가난과 병 그리고 죽음이 없는 평화라는 파 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구절을 통해 권영재 님은 “평화”라는 화두를 독자들에게 강하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고 느껴진다. 인류의 가장 큰 바램은 ”평화”일 테니까 말이다.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추구하고 바라는 염원 - 평화일 것이다.
욕심(탐진치)을 씻어버리고, 고집멸도苦集滅道에 이르는 것. 물외시, 자비행慈悲行으로 보리심菩提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많은 노작勞作에 응원과 박수갈채를 보내며, 더욱 문학에 정진하여 문업文業을 쌓길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그 또한 물외시이므로, 그 또한 작가 자신의 정서순화(카타르시스)뿐 아니라, 선업善業이기 때문이다.
[감수 시인 이정록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