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철학을 과거의 유산, 혹은 추상적 사유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 박수억은 장자의 사유가 단지 고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기술 구조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자는 오래전부터 “억지로 통제하지 말고, 각자가 자연스러운 질서 속에서 흘러가게 하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무위(無爲)의 사상이고, 자연(自然)의 도(道)이다. 억지로 애쓰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자유, 애쓰지 않음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충만함이 장자가 강조한 삶의 본질이다.
그는 사회적 유용성의 잣대에 갇히지 말고, 때로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발견하라고 했다. 쓸모없음 덕분에 나무가 오래 살고, 억지로 유용해지려 하지 않음 덕분에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달음. 그 철학은 오늘날 블록체인의 기술 원리와도 깊이 닮아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는 중앙 통제자가 없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규칙은 합의로 만들어지며, 시스템은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 누가 더 유용하고 더 강력한지를 따지지 않는다. 참여자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며, 그 자체로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이것은 장자가 강조한 존재의 소중함과 맞닿아 있다. 억지로 경쟁하거나 애써 올라서지 않아도,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 블록체인은 바로 그 질서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기술과 지식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고, 블록체인이 스스로 합의를 이루며, 데이터 네트워크가 자율적으로 진화하는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지식과 기술을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다. 기술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해 자기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유이며, 존재의 이유를 묻고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마지막 도구이다. 기술과 철학은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만났지만, 동시에 분리되는 시점에 와 있다. 기술은 자기 길을 가고, 인간은 철학을 통해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