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 『패션, 음악영화를 노래하다』 등을 통해 영화 속 흥미로운 패션 이야기를 들려줬던 진경옥 교수가 이번에는 패션과 영화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손꼽히는 한스 홀바인부터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 빈의 대표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고흐와 피카소,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에 이르기까지. 패션 산업과 패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열 명의 예술가와 그들의 생애를 담은 영화를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열정의 랩소디〉, 〈물랭 루즈〉, 〈팩토리 걸〉, 〈불멸을 찾아서〉 등의 영화를 통해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비범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만날 수 있다.
예술가와 패션디자이너 협업의 시작, 구스타프 클림트
의료용 코르셋까지도 패션이 된 프리다 칼로
패션과 예술의 협업은 구스타프 클림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림프가 주축이 되었던 미술가 집단 ‘빈 분리파’는 회화·건축·공예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을 추구하여 예술과 생활을 밀접하게 만들고자 했다. 여성 의상에서 코르셋을 내던진 의상개혁 운동이 일어난 이 시기에 클림트는 개혁의상의 선두 아티스트로 곡선과 기하학 형태를 활용하여 화려하면서 장식적인 여성복 옷감을 디자인했다. 클림트는 그 자신이 독보적인 예술가이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패션디자이너로서 활동했다.
멕시코 예술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에게 패션은 강력한 자기표현의 방식이었다. 일자로 이어진 눈썹, 땋은 머리, 멕시칸 민속 스타일의 옷, 크고 요란한 장신구로 대표되는 프리다의 패션은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차용되었다. 장 폴 고티에는 프리다의 환자용 보철 코르셋에 영감을 받아 마돈나의 콘 브라와 영화 〈제5원소〉의 붕대의상을 디자인했다.
고흐의 꽃 그림은 패션디자이너들이 특별히 사랑하는 주제이다. 고흐는 1886년 파리로 거처를 옮기면서 2년간 40점이 넘는 꽃병 연작을 그렸다. 제레미 스캇, 이브 생 로랑, 멀리비 자매 등이 고흐의 꽃 그림에서 영감 받은 패션으로 런웨이를 가득 채웠다. 피카소는 기하학적 패턴과 형태, 콜라주 의상, 과장된 형태로 패션계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피카소 그림의 과장된 형태는 ‘파워 숄더’라는 이름으로 패션 트렌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이엔드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무너뜨린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예술 작품
20세기 현대미술의 아이콘 앤디 워홀은 일명 ‘워홀 룩’을 선보이며 패션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다. 워홀이 가장 즐겨 입었던 리바이스 501 청바지와 블랙 턱시도 슈트는 아티스트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워홀의 팝 아트 작품은 디자이너들이 경쾌한 스타일을 연출할 때 즐겨 찾았다. 베르사체는 1991년 마릴린 먼로와 제임스 딘 얼굴이 그려진 워홀의 팝 아트 작품을 프린트한 이브닝드레스를 발표하였고 2018년 다시 한번 컬렉션에 등장시키며 워홀 작품에서 받은 영감의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장 미셸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미국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그라피티와 추상을 오가는 자유롭고 에너지 넘치는 작품으로 슈퍼스타가 되었다. 바스키아는 심오함과 장난기를 넘나들며 텍스트와 그림, 만화와 순수미술, 음악, 해부학 등의 요소들이 버무려진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엄숙한 미술관부터 시끄러운 슈퍼마켓, 하이패션부터 스트리트 패션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존재한다. 특히 MZ 세대를 겨냥한 캐주얼 스트리트 브랜드들은 왕관, 해골, 공룡, 레터링 등 바스키아의 상징적인 그라피티 아트를 제품 곳곳에 접목하여 출시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들은 명화 속 인물들이 걸치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에서 패션사를 읽어내고 새롭게 재현해낸다. 최근에는 과거의 시대 복식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 의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세상에 선보인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책을 통해 시대를 뒤흔든 예술 작품들이 현대 패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