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시집 『화택(火宅)』은 단순한 환경 시집을 넘어, 생태비평적 문제의식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작업이다. 기후위기와 멸종이라는 전 지구적 현안은 오늘날의 담론 공간에서 흔히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언어로 환원되지만, 이 시집은 그 위기를 언어의 윤리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화택』의 세계는 인간 중심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잡초, 나무, 동물, 곤충, 꽃 등 비인간적 존재들이 시적 화자로 등장하며, 인간을 향해 직접 말한다. 이러한 목소리의 전환은 생태비평이 강조해온 ‘타자의 발화권 부여’를 시적 형식으로 구현한 것으로, 인간-비인간의 위계적 구도를 허물고 생명공동체적 시각을 드러낸다.
특히 2부 「멸종위기」는 호랑이, 수달, 여우, 나비, 달팽이 등 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며 자연과 문명의 장송시를 펼친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불러냄’으로써 기억과 애도의 정치학을 수행한다. 3부 「화택」은 폭염, 온난화, 플라스틱, 패스트패션과 같은 현대 문명의 기표를 직접적으로 끌어와 시의 언어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더 이상 은유의 장르가 아니라, 문명 비판의 증언 매체가 된다. 특히 염라대왕에 간언하는 시적 형식을 취해 고발 문학의 유쾌한 실례를 만들어 낸다.
『화택』은 생태문학이 나아가야 할 두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하나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생태학적 상상력의 확장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의 위기에 처한 지구적 현실을 문학이 어떻게 증언하고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시집은 불경에서 가져온 ‘불타는 집’이라는 메타포로 압축된 ‘인류세의 풍경’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다. 이는 단지 환경문제를 다룬 시집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학이 수행해야 할 윤리적 책무와 생태적 감수성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화택』은 한국 현대시가 생태비평의 지평 속에서 새롭게 읽혀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