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2004년 4월 12일, 그날을 어제 일처럼 기억합니다. 상급 관청에 가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며 전신에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 나른했습니다. 기운이 없어서 차 안에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보이는 풍경이 모두 보풀이 일어나는 것처럼 가장자리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걸음을 걷는데 계속 메슥거리고 약간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이게 뭐지? 왜 이래? 토하고 나자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도는 듯했습니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은 ‘이게 중풍인가?’였습니다. 그것은 죽음 쪽에서 삶을 역광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병원을 두 곳 거치고 MRI를 찍은 끝에 나의 병은 ‘어지럼증’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1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나를 괴롭힌 어지럼증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어지럼증’이 되풀이될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일종의 공황에 가깝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 거점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의학 관련 서적과 종교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거둔 결실입니다.
과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추적해서 알려진 것이 나오면, 고통이 줄어들고, 마음이 진정되며, 힘을 얻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 이것이 문제였구나 싶은 착지점을 찾았습니다. 착지할 차원을 발견하자 나는 스스로 눈을 떴다고 믿었습니다.
호흡과 긴장 이완, 이 두 가지의 착지점은 찾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기분만 그럴듯했지 실제로 호흡이 느려지고 긴장이 이완되지는 않았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는 레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분’을 넘어선 ‘경지’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경지는 마음의 영역이라 과학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고뇌는 미래를 알지 못해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일어납니다. 병으로 인한 고통조차도 현재의 병 자체보다도 ‘이제 부터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죽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고통이 더해지고, 병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에 시달리면 허무와 죽음의 세계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모든 종교도 죽음 쪽에서 인생을 바라봅니다. 종교의 목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나 철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종교를 통해서일 것이고, 허구적 자아상에서 벗어나는 관조를 통해서일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어록(語錄)을 읽는 것만으로도, 고뇌의 대부분이 사라집니다. 그것은 심리적인 망아(忘我)의 경지에 가깝습니다. 자아가 없어지면 자신과 세계가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과 세계가 하나라는 그 절대적 자유에서 생기는 힘을 ‘생기(生氣)’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이 생기에서 우리는 ‘가볍고 편안한 마음’을 얻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가볍고 편안한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습니다. 개체의 경계를 뛰어넘는 관점을 하나라도 확보한다면 독자 여러분도 각자 자신만의 생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당시 월간 『고경』의 조병활 편집장으로부터 연재 청탁을 받았을 때,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한 지난 17년간의 경험에서 얻은 것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3년 7개월, 연재하는 동안 읽어 주고 격려해 준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경』 연재가 끝나자마자 단행본으로 출간하자고 제안해 준 성철사상연구원의 서재영 원장과 장경각 편집부 정길숙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불교 서적 출판사로서 명망이 있는 장경각에서 책을 내게 되어 기쁩니다.
이 작은 책을 독자 여러분에게 봉헌하면서 삼가 만나뵙기를 청합니다.
2025년 8월, 독락당(讀樂堂)에서
서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