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의 비망록을 읽는다. 살아온 무게만큼 두껍다. 그가 전해주는 풍경과 일상이 익숙한 듯 새롭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익숙하다. 그러나 그가 진정 들려주고, 보여주고 당신에게는 일분일초도 새로운 것이다. ‘지금’을 함께 하고 싶은 그 절절한 그리움이 시가 되어 긴 편지를 쓰고 있다. 그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구절을 갑장인 나의 가슴에도 새겨보고 싶다.
- 당신의 잔소리 같은 가을비가 내리고, 오랜 통증을 가만히 땅에 묻고 사는 친구.
- 모나고 아픈 것은, 너무 과해서 탈나지 않고, 좋고 아름다운 것들로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친구.
- 하나도 없는 것 같아도 넘치도록 가졌다고, 상자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좋다는 친구.
- 별반 다를 것 하나 없는 비슷비슷한 날에 문득, 부딪히는 그 무엇 하나 찾으러 오늘도 푹신한 침대에서 내려와 딱딱하고 불편하지만, 방바닥에서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는 친구.
오늘 밤에는 남몰래 우렁각시가 되어, 그의 ‘한적헌’ 툇마루에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싱싱한 풋고추에 강된장, 그리고 밀양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와야겠다.
- 하헌주 (시인, 밀향문학회 회장)
시란 인간의 내면을 가장 밀도 높게 사유하는 언어 예술이다. 정승준 시인은 적지 않은 이번 시편들에서 슬픔을 따뜻하게 보듬으려는 존재의 감각을 일깨운다. 특히 이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단순한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밀도 있게 탐문한다. 그는 삶의 구체적 장면(소, 지렁이, 거미줄 등)을 통해 고통과 상실이 주는 반복과 회복의 체현들을 사유의 결로 직조한다. 생명의 흐름이 인위적 질서에 의해 차단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 무력해진다. 그러나 시인은 시지프스가 맞는 형벌적 일상의 길에도 피어나는 꽃들을 놓치지 않는다. 시인은 결국 거미줄 같은 삶의 구조를 응시하는 섬세한 사유에 이르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 문희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