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와 ‘장자’를 함께 알아가는, 나와 세상을 사유하기 위한 인문교양서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에 만개한 제자백가의 핵심적 사상들과 『장자(莊子)』에 대한 이해를 강의식으로 풀어낸 정용선 작가의 저서이다. 인간과 세계의 근본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꽃피워낸 사상가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함께 장자를 알아가려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고대 중국사상과 장자를 통해 새로운 지식이나 일깨움을 얻기 위한 의도를 갖고 읽기보다는 강의자/저자의 목소리를 따라 가장 근원적인 인간 고민과 사유의 흔적을 따라서 가보는 과정에 책의 핵심이 있다. 그것은 제자백가 속에서 장자를, 장자 속에서 제자백가를 발견하는 이중적 과정이다. 제자백가와 장자에 대한 지식의 습득보다는 이들을 함께 발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런 접근 방식이 큰 장점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마치 장자의 태도처럼 겸허하고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의 장자에 다가가는 ‘사유의 여정’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결국 장자와의 마주침을 사상사적 맥락과 함께 풀어내고 인식하는 저자의 사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특별함은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본문은 16개의 강의로 구성돼 있는데 장자의 철학에 접근하기 전에 공자, 맹자, 순자, 노자, 한비자의 순으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두루 살펴보는 과정이 있다. 저자는 장자가 제자백가 사상 중에서 가장 철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예고하는데, 그건 “당대의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으로서 제출된 여타의 사상과는 달리 인간과 세계의 근본 문제에 대한 사유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의미”(15쪽)에서다. 그런데 그러한 장자 철학을 3개 강의를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앞서 무려 13강을 통해 여타의 제자백가 사상을 살펴본다. 많은 분량의 다른 사상가들을 먼저 읽음으로써 장자 사상의 핵심에 다가가는 생각의 준비를 하는 방식이다. 책을 처음 펼칠 때 의아하게 여겨질 만한 부분이다. 저자가 그동안 대학에서 행한 제자백가 교양강의가 바탕이 되었다는 설명도 있지만 이 점은 책의 의도를 드러내는 내용적 맥락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책의 구성적 맥락의 중요성 - 제자백가의 ‘무위’와 ‘유위’를 거쳐 장자의 ‘존재의 실상’으로
저자가 바라보는 제자백가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위(無爲)’와 ‘유위(有爲)’의 변증법이다. 본성에 따르는 무위로 향할수록 인간과 자연을 선(善)으로 보고 자연과 가까워지려 한다. 맹자의 성선설에 기초한 왕도사상이나 노자의 자연주의가 그것이다. 유위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연의 본래 결을 거슬러 자연에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힘을 가하는 것인데, 유위로 향할수록 인간과 자연을 악(惡)으로 보고 개조하거나 통제하려고 한다. 순자의 성악설에 기초한 예치사상과 한비자의 법가가 그것이다. 이렇게 공자, 맹자, 순자, 노자, 한비자의 사상이 나열식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분법적 대립과 균형의 맥락에 놓인다. 공자의 중용을 저울추로 볼 때 무위 쪽으로 나아간 맹자와 거기서 더 나아간 노자가 있다. 반대 방향 쪽에는 유위 쪽으로 나아간 순자, 거기서 더 나아간 한비자가 있다. 장자는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위와 유위로 나누고 자연과 인간을 나누고, 이상과 현실을 나누는 일체의 사유를 그 자체로 인간 사유의 ‘유위’적 결과로 보고, 각 사유방식을 바탕에서부터 철학적으로 검토하자고 나선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장자입니다.”(347쪽)
이 책의 두드러진 맥락은 저자를 따라 그 저명한 사상가들을 유위와 무위의 사유로 읽어가면서도 계속 뒤에 나올 장자를 기다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기존의 장자를 다루는 책들과도, 제자백가를 소개하는 책들과도 다른 점이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책 구성의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는 데 이 책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색할 수도 있는 이런 구성을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건 장자 연구가로서 저자의 학술적 결과물이 아니라 장자를 마주한 한 개인의 사유의 과정으로 읽히는 책의 방향성이 주는 진솔함이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텍스트,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장자를 다루는 마지막 3개의 강의에서 저자는 여러 사상가를 거쳐 온 독자들과 함께 인식의 도약을 시도한다. 『장자』 내편의 「소요유」와 「제물론」을 중심으로 사유에 대한 사유인 ‘메타사상’으로서의 장자 철학을 향한 여정을 본격화한다.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세상이 하나의 텍스트라면 장자는 텍스트의 이런저런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의 실상’을 본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철학하기(to philosophize)’를 보여준 사상가로 자리매김한다. ‘실상을 보려는 사유’에서는 세상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짜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인간의 해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 자체는 인간의 해석과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자연으로 얽혀서 서로 거래하며 유전(流轉)하는 세계’(354~355쪽)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