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은과 멀리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_본문에서
그날의 광장을 떠나온 우리에게 남아 있는
"우리"라는 빛바랜 이름,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질문들
한국 사회의 균열을 누구보다 끈질기게 응시하며 더없이 뜨거운 언어로 우리 시대를 기록하는 작가 박민정의 새 소설 『작가의 빌라』가 다소 시리즈 002번으로 출간되었다. 첨예한 현실과 직면하여 매번 서늘하리만치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 박민정은 이번 작품에서 ‘광장’과 그 이후의 윤리에 대해 묻는다. 『작가의 빌라』는 12.3 내란 사태로 또 한 번의 광장을 거쳐온 우리 모두에게 광장 이면에 감춰진 모순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라는, 시의적절하면서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과제를 던지는 동시에 새로운 연대와 치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한다.
논픽션 작가 ‘나’는 ‘광장 이후 20주년’ 행사에서 한때 ‘육아일기’로 인기를 끌었으나 몰락한 작가 최효연의 딸 ‘소은’을 만난다. 소설은 최효연이 저지른 과오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작가 레지던시 ‘예술가의 뜰’로 향하는 이틀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조수석에 앉은 소은은 여행하는 내내 열등감 속에서 망가져 간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나’는 운전을 하며 또 다른 레지던시 ‘작가의 빌라’에서 마주했던 최효연의 폭력적인 언행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운동권과 예술계의 악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소은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마주하며 광장에서 활동하던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 ‘지영’과 함께한 순간들을 곱씹는다.
서평가 정희진이 “후일담, 페미니즘, 퀴어 등 특정 범주에 묶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서사를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듯, 두 여성의 이야기는 하나의 결말이나 메시지로 귀결되지 않고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남긴다. 이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힘은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마치 ‘광장 이후’ 계속해서 흘러가는 일상처럼,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들 속에 있다고 말하는 듯도 하다. 『작가의 빌라』는 그러한 뜨거운 질문들을 품고서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지만 진실한 용기와 위로를 건넬 것이다.
“함께했으나 더는 함께일 수 없고,
도저히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과 함께한
뜨거운 어떤 날, 어떤 광장을 떠올리면서”
광장에서 쓴 한 편의 소설
작업 일기 「소설가 박민정의 금요일」 수록
이 소설은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두 계절에 걸쳐 집필되었다. 집필 장소는 서울 청계천의 한 카페였다. 작가는 겨우내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의 빌라』에는 소설을 집필하며 쓴 일기 「소설가 박민정의 금요일」이 수록되어 있다. 2025년 4월 4일 탄핵 심판 선고일의 광장에서의 하루를 담은 이 일기에는 소설을 쓰는 일일을 넘어 소설가이자 한 사람의 시민인 박민정이 살아낸 한 계절, 그가 거쳐온 수많은 광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는 한 편의 일기를 읽고, “오래전 그날들에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을 제각기 떠올리며 소설에 담긴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어떤 광장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리즈 소개*
한 편의 소설, 그리고 한 사람의 하루
다산책방의 소설 ‘다소 시리즈’
다소 시리즈는 한 편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의 일상과 리듬, 집필의 순간을 함께 담아내는 다산책방의 한국문학 시리즈입니다. 독자는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뒤, 소설가의 사적인 일기를 읽으며 집필의 나날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소설가의 실제 책상까지 사진으로 마주하며 한 사람으로서의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의 책상에서 태어나며, 때로 독자는 이야기 뒤편의 책상에 앉아 있을 그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데서 출발한 다소 시리즈는 쓰는 사람뿐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도 집중합니다. 모든 표지의 북태그에는 고유한 인쇄 순번이 적혀 있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하나뿐인 책을 소장할 수 있습니다. 도서 정보가 적히는 판권 페이지에는 읽은 이의 이름과 완독 날짜까지 적을 자리를 마련해 둠으로써 모든 소설은 한 사람의 독자가 읽는 순간 완성된다는 의미를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으로, 다소 시리즈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만남’으로서의 독서 경험을 선사합니다. 크고 작은 이야기를 아우르는 유연함, 일상의 한 조각을 담아내는 친밀감으로 한 편의 이야기와 한 사람의 하루를 담아내는 문학 컬렉션, 다소 시리즈의 시작을 기쁜 마음으로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