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날 때부터 무용한 일들에 마음을 더
빼앗기는 타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_본문에서
직진할 수만은 없는 삶의 면면과
빙 둘러 가는 길에서 새로이 발견되는 ‘나’라는 풍경
일상의 사소한 울적함과 유쾌함, 그 감정의 변곡점을 가뿐하게 포착해 내는 송지현 작가의 새 소설이 다소 시리즈 003번으로 출간되었다.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는 한결같은 듯하면서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계절의 흐름 속에 담아낸 소설이다. 그간 단편만 발표해온 송지현 작가가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간 첫 소설이기도 하다. 단편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로 작가를 이미 만나본 독자라면 오래 기다려왔을 책이다.
개울이든 하천이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물은 틀림없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그러하듯이. 어영부영 시간의 흐름에 휘둘려 어느샌가 어른이 된 ‘나’는 문득 지나온 과거를 돌아본다. 엄마가 차린 식당 구석 자리에서 소금 통의 뚜껑에 낀 소금을 파 올리며 시간을 보내던 꼬마. 사과 깎기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먹지도 않을 사과를 한 포대나 깎아두었던 그 아이는 어느덧 “회사고 가게고 아무 데도 출근을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라고 생각한 존재는 어쩌면 매 순간 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고 여길 만큼 과거와 지금의 모습은 다르지만, 과연 다르기만 한 걸까. 별다른 이유 없이 산딸기를 찾아다니는 지금의 ‘나’는 어떤 면에서 한결같다. 그러니까, “무용한 일들에 마음을 더 빼앗기는 타입”이라는 점에서.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에는 맘먹은 대로 직진하지 못하고 꼭 굽이진 먼 길로 돌아가게 되는, 혹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야 마는 삶의 면면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세상의 평범한 ‘나’들에게 건네는 문장의 걸음걸음이 자못 경쾌하다.
“결국 편집자에게 장문의 사과 메일을 보냈다.
물론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았다.
그래서 사실은 이 일기를 송고하게 될 날이 매우 두렵다.”
소설 한 편의 탄생, 그 이면의 ‘진짜’ 후일담
작업 일기 「소설가 송지현의 일요일」 수록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에는 「소설가 송지현의 일요일」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여러 편의 일기가 수록됐다. 2025년 7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집필 후일담 격으로 쓰인 일기에는 작가의 솔직한 사정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마감을 해야 한다.” “내일은 꼭 마감해야지.” 편집자의 끊임없는 독촉에 시달리며 수없이 다짐하지만, 송지현 작가의 다짐이란 도무지 지켜질 기미가 없다. 고등학교 친구가 놀러 와서 술을 한잔해야 한다든가, 록 페스티벌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불쑥 생겨난다든가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서다. 소설가의 일상, 그 사적인 장면들은 그가 쓴 소설 속 순간들과 묘하게 포개어지며 독서의 재미를 더한다. “오늘은 굳이, 좀, 멀리 돌아가 보아도 되겠지요?” 능청스럽게 묻는 작가의 목소리는 소설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의 또 다른 마침표가 되어준다.
*시리즈 소개*
한 편의 소설, 그리고 한 사람의 하루
다산책방의 소설 ‘다소 시리즈’
다소 시리즈는 한 편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의 일상과 리듬, 집필의 순간을 함께 담아내는 다산책방의 한국문학 시리즈입니다. 독자는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뒤, 소설가의 사적인 일기를 읽으며 집필의 나날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소설가의 실제 책상까지 사진으로 마주하며 한 사람으로서의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의 책상에서 태어나며, 때로 독자는 이야기 뒤편의 책상에 앉아 있을 그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데서 출발한 다소 시리즈는 쓰는 사람뿐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도 집중합니다. 모든 표지의 북태그에는 고유한 인쇄 순번이 적혀 있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하나뿐인 책을 소장할 수 있습니다. 도서 정보가 적히는 판권 페이지에는 읽은 이의 이름과 완독 날짜까지 적을 자리를 마련해 둠으로써 모든 소설은 한 사람의 독자가 읽는 순간 완성된다는 의미를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으로, 다소 시리즈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만남’으로서의 독서 경험을 선사합니다. 크고 작은 이야기를 아우르는 유연함, 일상의 한 조각을 담아내는 친밀감으로 한 편의 이야기와 한 사람의 하루를 담아내는 문학 컬렉션, 다소 시리즈의 시작을 기쁜 마음으로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