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검찰의 역사와 특징으로 제도적 상상력을 넓히다
검찰 제도는 나라마다 역사적 경험과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며 때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 설계도가 끊임없이 수정되기도 했다. 각국 검찰 제도의 기원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검찰을 어떻게 구성하고 검찰에 어떤 권한을 부여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주권자인 국민이며, 검찰은 국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현대적인 검찰 제도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왕을 법적으로 대리하는 직책인 "왕의 대관"이 범죄에 대해 소추했다. 하지만 혁명기에 "소추는 인민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1808년 치죄법을 통해 형사 소송과 검찰 제도의 원형이 정립되었다.(62쪽) 또한 현재 프랑스는 예심 판사와 다수의 검찰총장(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두는 등의 장치를 통해 권한 집중을 막고 있다. 독일은 19세기까지 소추와 재판을 모두 법원이 관장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 검찰 제도가 수입되면서 소추와 재판이 분리되었다.(63쪽) 또한 독일은 검사가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객관 의무"의 발상지다. 그래서 독일 검사는 피고인의 혐의 사실뿐 아니라 무죄 사유나 유리한 증거도 적극적으로 조사·수집해야 한다.(94쪽)
건국 초기의 미국에서 검사는 법원 소속의 하급 공무원이자 판사의 보조자 역할에 그쳤고, 법 위반자를 체포하고 기소하는 것은 보안관의 임무였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미국 사회 전반에 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검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검사 선거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렇게 시민의 선택을 받은 검사의 역할과 권한은 점점 강력해졌고 이제는 시민 위에 군림하는 폐해를 낳게 되었다.(28쪽) 반면 영국에는 1986년 전까지 검찰 제도 자체가 없었고,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해 왔다. 하지만 1972년 발생한 한 살인사건과 그로 인한 세 소년의 억울한 옥살이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켜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는 형사 사법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에 1986년에 "기소청"이, 2000년에는 "기소감찰청"이 각각 창설되어 권한의 오남용을 막을 겹겹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66쪽)
일본은 1872년 프랑스의 근대적 형사 사법 체계를 도입했으나 이후 독일 형사 사법 체계의 영향을 받아 검찰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을 재정했다. 검사가 피의자를 직접 구인·구류하고 압수수색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수사 구조 형성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효율적으로 식민 지배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러한 검찰 중심 체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해방 뒤 폭압적이었던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고,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속에서 폭력적 공권력의 핵심이던 군과 정보기관이 위축되자 이때 생긴 공백을 검찰이 차지했다. 현재까지 우리 검찰 제도에는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과거 독재 권력이나 검찰 자체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것일 뿐이었다.(64쪽) 검찰 제도의 형성과 변화에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가 적극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검찰은 민주적 통제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 되고 말았다. 검찰이 타락할 위험성은 제도에 내재한 것이며 이는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될 수 있음을 우리는 "윤석열의 검찰 공화국"을 통해 여실히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런 최악의 검찰조차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과연 다른 나라들은 검찰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제도와 장치를 두고 있을까?
검찰권 오남용을 막기 위해 각국은 어떤 시스템을 마련했을까?
검찰의 폐해를 막으려면 비대한 권한을 분산시키고 부당한 권한 행사가 응징될 수 있도록 제도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검찰을 시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민주적 자치 이념이 구현된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가 미국의 검사 선거 제도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검사를 선거와 소환 투표를 통해 직접 심판하거나 재신임할 수 있는데 미국 내에서 45개 주가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검사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195쪽)
수사·기소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검사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권한이다. 프랑스의 예심 판사 제도는 이 위험을 방지할 견제 장치다. 예심 판사는 법원에 속해 있으면서도 재판에는 관여하지 않고 수사를 임무로 하는데, 우리나라 검찰처럼 수사·기소권을 온전히 한 손에 쥐고 있지 않다. 수사와 기소를 하나의 기관이 주도하면 "표적 수사, 표적 기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검찰과 예심 판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눠 갖고 이중삼중의 제약과 감시 속에 그 권한을 행사한다.(77쪽)
검찰의 황당한 기소·불기소 처분은 국민을 분통 터지게 만든다. 미국의 대배심과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국민 눈높이"가 기소 여부 결정에 "실제로" 관철되도록 하는 제도다. 대배심 제도는 검사가 범죄 혐의자를 기소하려 할 때 일반 시민들이 그 타당성을 직접 조사해 결정할 수 있다. 대배심은 검사의 요청으로 법원이 소집하는데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 시민 12~23명으로 구성되며 과반수의 찬성으로 기소 또는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다. 대배심 제도는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기관으로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완충제 및 심판 역할"을 한다. 일반 시민인 배심원은 정치적 압력이나 인사상 유불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법관이나 여타 결정권자들보다 더 공정할 수 있다.(214쪽)
이런 대배심 제도에 맹점이 하나 있으니 검사가 부당하게 "불기소"한 사건은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검사가 불기소한 사건을 재심사해 기소할 수 있는 제도다. 검찰심사회는 165곳의 지방 법원·지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6개월마다 해당 지역 유권자 중 무작위로 11명을 선정해 구성한다. 검찰심사회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었으나 제도 시행 50년 만인 2009년에 제도 개혁으로 기소를 강제하는 효력을 얻었다. 덕분에 공직자나 정치인 등의 기소에 소극적인 검찰을 더욱 강력하게 감시·견제할 수 있다.(219쪽)
형사 사법이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하는 건 명백한 민주주의 원칙이다. 검찰이 이 원칙을 따르지 않을 때 국민은 말로만 원칙을 요구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현실적으로 주권자 참여 제도가 없다. 검찰의 "부당한 기소"를 견제할 주체는 사법부, "부당한 불기소"를 견제할 주체는 국회밖에 없다. 선출되지 않은 막강 권력인 검찰이 민주적 정당성을 얻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검찰이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하면 주권자 국민의 의지로 검찰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검찰 개혁이다.
글로벌 사례를 통해 알아보는 검찰 개혁의 쟁점들
앞에서 소개한 미국의 검사 선거 제도에도 취약점은 있다. 검사를 선거로 뽑기만 하면 시민의 뜻을 잘 받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선거를 의식해 큰 사건에만 집중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는 등 부작용이 생겼다. 또 소수 집단을 불평등하게 대우하거나 범죄 예방·교화보다는 강경 처벌에 치중했다. 게다가 선거 경쟁은 그다지 치열하지 않아 현직 검사의 재선이 두드러졌다. 결국 선출된 검사도 권한 오남용을 일삼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미국판 검찰 개혁 운동인 "진보적 검사 운동"이다. 2015년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혁 성향의 검사 후보들을 지원했는데, 그 결과 2023년 12월 기준으로 13개 선거구에서 진보적 검사가 선출되었다. 또 백인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검사직에 유색인종 여성이 다수 진출한 것도 큰 성과다.(205쪽)
이처럼 선거로 뽑은 공직자라고 해서 모두 민주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과 소통·교감하지 않고 마음대로 권한을 휘두르면 민주주의를 찌르는 칼이 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막강한 권한과 재량권을 가진 대한민국 검찰은 어떤가? 국민의 선출을 통한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않고,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다. 아무리 권한을 오남용하는 검사도 국민이 교체할 방법이 없다. 검찰의 독재화를 막으려면 검찰권 행사에 민의를 반영할 제도적 장치와 함께, 부당한 검찰권 행사에 대한 확실한 응징 수단이 필요하다. 국내 검사 징계 제도는 징계가 검찰 자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검사징계법 개정안이 2025년 6월 5일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변화의 물꼬가 터졌다.
해외에서는 이보다 훨씬 치밀하고 적극적이다. 미국에서는 검찰권 남용 검사에 대한 징계를 법원이 관장할 뿐 아니라 법무부 안에 감찰관실과 법조윤리실이라는 독립 기관을 두어 이중의 감시를 한다. 영국은 검찰 자체적으로 엄격한 징계 제도를 두는 한편 검찰의 감시를 주된 임무로 하는 기소감찰청을 따로 두었다. 프랑스에서는 헌법 기관인 최고사법관회의가 검사 징계를 담당하는데,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일반인도 검사 징계를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검찰청에는 검사의 비위를 감시하는 감찰부가 있지만 실효적이지 않다. 그래서 현실적인 검사 징계 제도는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관여하는 탄핵 제도뿐이다.(237쪽)
부당한 기소·불기소 검사를 징계·탄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 2018년 독일 연방 대법원은 증거가 충분한데도 불기소를 한 프라이부르크 검찰청 소속 검사에 대해 법왜곡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독일은 형법 제339조에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으며, 스페인·노르웨이 등도 공무원의 법 왜곡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또 오스트리아·스위스·프랑스 등은 직권남용죄를 통해 법을 왜곡한 법관을 처벌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권남용·직무유기죄로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어 꾸준히 법왜곡죄 신설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251쪽)
어떤 나라의 검찰 제도도 완벽한 "모범"은 아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따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 스며 있는 원칙과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이를 우리 현실에 접목한다면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우리만의 제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검찰 제도에서 개선할 점을 찾고,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검찰 제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새로운 검찰 제도의 설계자는 우리 모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