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처럼 서서 바라보는 당신 든든해서 마음을 주었고 그 마음 안에선 당신의 몰염치도 연민으로 다가왔는데 당신의 늦은 외출이 잦을수록 쓸쓸히 무너진 나 거울 밖의 사람처럼 무표정이 되어갔지 당신에 대한 불안은 의심의 탑이 되어 혈 막힌 몸이 마구 떨렸지 별리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해무 속에서 멀어지는 서로를 바라보았지
서로의 등대를 등지고
- 「등대」 전문
이 시는 결혼 생활의 긴 여정, 그 중에서도 의심과 무너짐, 냉소와 정서적 이탈이라는 감정의 모든 스펙트럼을 응축한다. 여기에서 ‘등대’는 단지 공간적 상징이 아닌, 관계의 의무와 의미를 비추는 감정의 기호다. "당신의 몰염치도 연민으로 다가왔지"와 "거울 밖의 사람처럼 무표정이 되어갔지"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실망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자기 안의 무기력, 감정의 소진, 타자화된 자아까지 드러낸다. 여기에서 ‘자아 반성’ 개념이 구조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단지 한 쌍의 부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부부 관계의 역사, 중년 이후의 정서 소외와 관계 해체를 그렸다. 이는 시적 화자의 감정의 ‘지리학’과 ‘시간성’이 동시에 담긴 텍스트다. “서로의 등대를 등지고”에서 관계는 서로를 비추는 빛이었지만 결국은 반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는 허무와 결혼 생활의 긴 여정에서 ‘등대’조차 무력해진다는 뜻으로 읽힌다. ‘등대를 등진’다는 상징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 종결, 혹은 감정적 단절의 순간과 겹쳐진다. 이 공감성은 시를 단지 ‘이별’이라는 사적 문제로 축소시키지 않고, 인간 존재의 고립으로 확장시킨다.
다음 시는 삶의 구체적 경험이 언어로 형상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수술과 출산, 수혈이라는 ‘신체의 기억’을 담담하게 나열하며, 남편의 헌혈증서를 마치 생존의 조건처럼 들고 간다. 그러나 그 극적인 고통 이후 그녀를 찌르는 건 한마디 말이다.
아이 낳으러 갈 때 수술하다 피가 부족하면 수혈받아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 어릴 적부터 뼈에 가죽만 붙어 헌혈 신청하면 매번 거절당한 나는 남편의 헌혈 증서를 몽땅 다 챙겨 들고 갔다 수술대에 올라 무통마취에 제왕절개 무사히 큰아이를 낳고 수술비의 한 부분을 헌혈 증서로 대신하고 퇴원해 친정엄마의 산간 받으며 겨우 몸을 추스르던 중에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집으로 돌아왔다
난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밭 매러 갔다.
- 「말 한 마디」 전문
‘말 한마디’는 시의 제목이자 고통의 실체다. 이 시적 화자는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고, 남편의 헌혈증서를 끌어안고, 산후조리를 마치기도 전에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그 말은 “난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밭 매러 갔다.”는 시어머니의 발화다. 이 단순한 진술은 화자의 존재와 경험을 무화하고 그녀의 말할 권리를 침묵시킨다.
이 시에서 며느리는 고통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는 화자다. 시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것은 시적 화자의 말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말이다. 이 시에서 말의 주체는 권력을 가진 자 즉 시어머니이며, 고통의 주체인 화자는 발화권을 박탈당한다. 또한 시어머니는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구조에서 남성적 권위를 내면화하고 재생산한다. 시어머니는 ‘나는 강했다’는 서사를 통해 며느리의 고통을 ‘약함’으로 환원하고, 그 말 한마디로 여성 간 연대를 차단한다.
이 시에서 화자의 신체적 경험은 시적 화자의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에 대한 의미 부여와 판단은 시어머니의 말에 종속된다. 시어머니의 말은 “나는 더 강했다”는 자랑이 아니라 사실상 화자의 고통을 무의미한 것으로 식민화하는 언어의 폭력이다. 이 말 앞에서 시적 화자는 몸은 말하려 하나 말은 꺼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결국 침묵을 기록한 텍스트일 뿐인가? 아니다. 이 시는 오히려 말할 수 없는 자의 언어를 되찾기 위한 시작이다. 화자는 시어머니에게 말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시로 기록함으로써 말할 수 없었던 경험을 전언(傳言)한다. 시는 그 자체로 침묵을 깨뜨리는 해방의 언어다. 시의 마지막 행은 시적 화자의 말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말로 끝나지만 시 자체는 화자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따라 읽고, 공감하고, 기억한다. 그 순간, 침묵은 언어가 되고 억압은 고백이 되며, 시인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자가 아니다. 이 시는 개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짊어지는 감정의 유산이다. 이 시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이 말 한마디, 당신도 기억하고 있느냐"고.
다음 시에서 우리는 상실의 기록과 기억의 비움으로써 ‘임대차 계약서’에 서린 존재의 무게를 읽어낼 수 있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 와 / 낮에는 금강을 바라보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초대하고/ 계절마다 베란다에 꽃나무 키워 숲을 가꾸었지 // 남편 퇴직에 / 집을 팔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 사겠다는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전세 놓기로 했지 // 임대차 계약서를 썼지 // 어디부터 먼저 비울까 / 내 안의 금강부터 비울까 / 밤마다 쏟아진 별을 모아둔 거실부터 비울까 / 아니면 꽃들과 대화하다 뛰어 들어가던 서재부터 비울까 // 계약서만 쓰면 좋겠다던 맘을 사라지고/ 뭉개진 감정이 심장을 콕콕 찌른다// 情 놓고 다니는 이사 / 얼마를 더 돌고 돌아야 떨어질까? / 발의 힘이 풀린다
- 「임대차 계약서」 전문
이 시는 퇴직 후의 삶,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비우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정체성의 해체와 재구성을 다룬다. 시적 화자는 "어디부터 먼저 비울까"라고 자문하면서 “내 안의 금강부터 비울까 / 밤마다 쏟아진 별을 모아둔 거실부터 비울까/ 꽃들과 대화하다 뛰어 들어가던 서재부터 비울까”와 같이 단지 물건이 아닌 자기 존재의 일부들을 나열한다.
이 시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든 장소에서 시간이 지워지고, 기억이 매각되는 감정을 보여준다. 문학이 단지 감정을 전달하는 장르가 아니라, 시간의식을 담는 구조다. 이 시는 바로 그 시간의식, 즉 삶을 축적하고 잃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감정의 흐름을 시적으로 재현한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행위가 펜 끝이 아니라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 시는 언어와 감각이 교차하는 진실의 층위에 도달한다. 독자는 이 공간의 상실을 물리적 이사로만 느끼지 않는다. 이는 정체성과 기억, 시간의 거처가 붕괴되고 있는 실존의 위기다. 이 시는 바로 잘 다듬어진 ‘경험의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은숙 시인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반복해서 고통을 받지만 침묵하지 않고, 손상되지만 기록하고, 지워지면서도 남기려 한다. 이는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언어 행위로서의 시 창작 작업이다.
시 「가장」에서 ‘고목이 된 사내’ “단단한 두 아들도 두었는데... 이제 부드러운 마파람에도 흔들린다.” 삶의 오랜 동반자인 남편을 나무에 비유하며, 세월에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과 함께 ‘가장’으로서의 위엄과 쇠약함을 대비한다. 끝엔 햇살을 막아주는 손길로 남편의 다정함을 짚으며, 연민과 애정이 교차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시 「가위바위보」에서는 “남의 편을 내 편으로 바꿔야 하나/ 내가 바꿔야 하나/ 당신이 바뀌어야 하나”와 같이 부부 관계의 미묘한 거리, ‘주말부부’라는 설정 속에서 관계의 주도권과 피로감이 잘 드러난다. 일상은 한쪽의 희생으로 꾸려지지만, 그 균형은 늘 "가위바위보"처럼 요동친다. 시 「비대면」에서는 “제사상 위에 얹힌 어깻죽지와 허리에서 내가 파열되는 소리가 크다” 같이 가족 간의 역할과 피로, 감정노동이 낱낱이 드러난다. "비대면"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코로나 시대의 상황이 아니라 시어머니-며느리-남편-시동생 간의 정서적 단절까지 함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