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트, 딸의 손길…
맛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이야기가 된다!
도쿄제국호텔 주방에서 배운 콩소메의 투명함과 베샤멜의 부드러움, 끝없는 연습 끝에 완성한 오믈렛, 가정식으로도 더없이 훌륭한 햄버그스테이크와 크로켓, 크리스마스를 밝혀주던 로스트치킨, 셰프의 자존심이 담긴 로스트비프…. ‘연희동 요리 선생님’으로 유명한 ‘나카가와 히데코’가 특급 호텔 프렌치 셰프였던 아버지 ‘나카가와 다모쓰’의 레시피 노트를 연다. 빛바랜 노트 속 요리들을 하나씩 재현하고, 오늘의 주방에 맞게 재해석한다. 쇼와시대부터 헤이세이시대까지 이어진 60년 요리 인생을 복원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아버지의 레시피』는 한 사람의 역사를 재발견하는 기록이자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룬 ‘맛’을 되짚는 과정이며,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완성하는 한 그릇의 대화이다.
에세이에 앞서 아버지의 요리 인생을 정리해 실은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기록을 살피고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탐정이자 인류학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본문은 크게 에세이와 레시피로 나뉜다. 에세이를 펼치면 말 그대로 ‘타임머신을 탄 듯’ 쇼와시대와 헤이세이시대를 넘나든다. 잡지를 보며 맛본 적 없는 디저트를 상상하던 섬 소년의 꿈이 도쿄로 상경해 모든 것이 새롭던 열여덟 살 호텔 수습생의 하루로 이어진다. 퇴근 카드를 찍고 뒷문으로 주방에 돌아가 연습을 거듭하던 성실한 청년의 모습은 셰프로서의 자존심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장년의 모습과 겹쳐진다. 주어진 길 앞에서 늘 겸손하던 아버지가 자신의 가게를 내고 새로운 요리를 실험하던, 조금은 자유로워진 만년의 모습에 독자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번진다. 에세이 명가인 마음산책 출판사 정은숙 대표는 “재료가 익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도 놓치지 않는 선하고 따뜻한 성정이 부녀를 잇는다”는 추천사를 전했다.
요리의 온기는 물론 연희동 주방 구석구석까지 담백하게 포착한 칠십여 컷의 사진 또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저자가 태어나기 전, 식생활이 급변하던 그 시절의 풍경마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저자의 치밀한 취재 덕분이다. 아버지의 음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특급 호텔표’ 기본기부터 실패하기 쉬운 포인트와 가정에서 응용하는 비법도 충실히 수록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온지음’의 조은희 셰프가 추천사에서 말했듯 곧장 주방으로 달려가 요리를 하고 싶어진다. 누군가와 따뜻한 한 끼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 독자를 위해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에서 음식 문화를 만들고 나누어온 저자가 서른일곱 가지 실전 레시피를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맛이 고플 때나 마음이 고플 때, 손 닿는 곳에 두고 오래오래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