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이후 자유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역사, 진보, 자유….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변증법적 고찰
이 책의 원전은 1964-1965년 겨울학기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아도르노가 진행한 스물여덟 차례의 강의를 롤프 티데만이 편집해 출간한 것이다. 훗날 주저가 되는 『부정변증법』의 예비 작업으로, 아도르노는 여기에서 자유와 역사철학을 중심으로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민족성, 보편사, 자연사, 진보, 도덕성, 의지의 자유 등을 고찰한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동시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존재와 존재자, 언어적 분석에 머물러 있을 때, 아도르노는 현실과 역사적 사건, 그 파문에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비판적 사유를 전개했다. 이 책에서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헤겔의 진보 개념이 현실과 동떨어졌음을 지적하고, 관리되는 세계, 즉 보편적인 것의 지배에 놓인 세계가 개인을 기능으로 격하하고 자아의 약화, 순응이 자유를 제약한다고 분석한다.
역사적 사건들은 단순히 주어진 계기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아도르노는 민족정신과 민족을 보편사 또는 세계정신의 구성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하고, 그 관계를 밝히면서 민족 개념에 내재해 있는 낭만적이나 퇴보적인 요소가 결국 인종적 광기로까지 전개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연사 개념을 다루면서는 역사적 산물이 굳어져 반복과 재생산을 통해 자연처럼 작동하는 ‘제2의 자연’을 적시하며, 이를 통해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와 이성 중심주의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아도르노에게서 진보는 단순한 기술적 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 나아가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고, 동일성과 지배질서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그에게서 자유는 속박에 대한 저항의 총괄개념이며, 부자유 속에서 비로소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칸트의 형식적인 자유론이 배제한 충동적·신체적 요소와 아울러 사회적 맥락을 포함할 때에야 자유가 발현될 수 있다.
아도르노의 목소리를 복원하다
티데만의 세심한 편집으로 살아난 위대한 철학 강의
이 책을 편집한 롤프 티데만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서 박사학위를 받고, 1959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연구 조교, 개인 비서로 일하며 아도르노 전집의 편집을 맡았으며, 아도르노 아카이브의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의 편자로서 “마치 아도르노 자신이 자유롭게 수행한 강의의 편집을 맡은 것처럼, 혹은 그가 자신의 강의를 출간하기 위해 수행한 것처럼 작업하기 위해 노력했다.”(481쪽) 텍스트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되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개입하여 사소한 문법 오류와 지나친 반복을 수정·삭제했고, 아도르노가 잘못 사용한 단어는 의미가 분명해지는 선에서 손보았으며, 단순한 군더더기 표현은 제하면서 전반적으로 원래 발화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주석들에서는 강의에서 사용된 인용들의 전거를 제시했으며 또한 아도르노가 끌어오거나 끌어올 수 있었을 구절들을 인용하기도 했다.”(482쪽) 아도르노 강의의 생생함과 철학적 정밀함을 동시에 고려한 티데만의 세심한 편집은, 난해하고 복잡한 아도르노 사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현장의 강의를 텍스트로 옮기는 방식의 전집 편집에도 참고할 만한 기준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