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개정증보판 출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을 책임져 온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가 6년 만에 한층 깊어진 시선을 담아 돌아왔다.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는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들 ‘틀딱, 벙어리장갑, 지잡대, 흑형, 명품 몸매…’ 등을 짚어 내며,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나 관용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뼈아픈 차별과 혐오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책이다. 출간 직후부터 다수의 기관에서 추천도서로 선정했고,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으며, 여러 매체와 모임에서 청소년 필독서로 거론하면서 ‘언어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책이기도 하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초판 이후 달라진 사회 환경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회적 재난, 심화되는 불평등 등 최근의 사건·사고 속에서 피해자와 약자를 향해 쏟아지는 왜곡된 언어를 꼼꼼히 추적한다. 새로 추가된 다섯 번째 장에서는 병이나 사고, 참사의 피해자를 향한 무심한 발언들이 어떻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기존의 내용을 세심하게 다듬고 보완하는 동시에, 새로이 떠오른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분석해 지금을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일상에 흩뿌려진 ‘먼지 차별’을 추적하다
우리 일상에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차별들이 떠다니고 있다. 이를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 하는데, ‘아주 작은(micro)’과 ‘공격(aggression)’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미세하지만 공격적인 차별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먼지 차별’이라고 부른다. 공기 중에 흩뿌려져 있지만 인체를 해치는 미세먼지처럼, 일상 언어 속에 녹아 있는 차별어들은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선명한 상처를 남긴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주고받는 차별적인 표현들을 하나씩 끄집어내 그 기원과 맥락을 짚는다. 그리고 장난처럼 쓰인 말들이 언제부터 차별과 혐오의 기호가 되었는지, 왜 쉽게 바뀌지 않는지 집요하게 질문한다.
“책을 통해 단순히 “이런 표현은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어. 표현의 뜻과 등장 배경, 그 표현을 쓸 때의 여러 맥락 등을 다층적으로 짚어 보며 우리가 얼마나 틀에 박힌 편견과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있는지, ‘우리’라는 이름으로 제멋대로 기준을 만들어 두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향해 벽을 치는지 독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 그런 생각으로 표현들의 의미와 배경 그리고 그 영향을 집요하게 쫓아 봤어.“ _‘들어가는 글’에서
기울어진 존중과 예의는 사양합니다!
누구를 비하하지 않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언어 감수성 훈련
1장 ‘한 끗 차이로 생겨나는 차별의 언어’에서는 나이와 직업 등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언어를 다룬다. ‘00충’ 같은 집단 낙인, ‘다문화’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배척의 역사, ‘아저씨’와 ‘아줌마’ 뒤에 가려진 직업적 멸시를 추적한다.
2장 ‘오해와 이해 사이에 멈춰 서서’는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의 시선을 비춘다. 결손 가정, 결정 장애, 눈뜬장님 같은 표현 속에 ‘정상/비정상’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3장 ‘이상한 정상 이름을 찾아서’는 성별과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여자는 운전을 못한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 같은 낡은 규범이 어떻게 가능성과 권리를 억압하는지,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언어 현실을 파헤친다.
4장 ‘세상의 중심은 이미 정해져 있을까?’는 학벌, 지역, 집값 같은 ‘출신’ 중심주의가 사람의 가치까지 평가하는 사회적 풍경을 비춘다. ‘지잡대’ ‘촌뜨기’ ‘멍청도’ 같은 단어들이 차별을 고착화하는 현실을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이번 개정증보판에 새로 추가된 5장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회를 꿈꾸며’에서는 사건의 피해자를 편견의 틀에 가두는 언어, 질병이나 사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치부하거나 왜곡하는 표현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피해자다움’ ‘발암캐’ ‘유족충’ 같은 말에 숨어 있는 의미를 파헤치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선과 태도를 묻는다.
책의 주제가 자칫 무겁게 다가올 수 있으나, 김가지 작가의 네 컷 일상 만화가 곁들여져 책에 생동감과 재치를 더한다. 그 덕분에 독자는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생생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하며 읽어 나갈 수 있다.
예민함을 통해 존중을 배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정도는 그냥 농담 아니야?’ ‘이런 것까지 신경 쓰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아?’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저자 역시 그러한 피로감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예민함’이 언어 감수성의 출발점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쓰는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까’를 떠올리는 순간, 존중과 배려가 시작되는 것이다.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는 차별 반대를 외치기에 앞서 먼저 우리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조금 불편해도,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이렇듯 차별어를 발견하는 일은 단순히 ‘나쁜 말’을 골라내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존중과 평등의 언어를 새롭게 세워 나가는 과정이다. 특히 지금처럼 언어폭력이 빠르게 확산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언어가 지닌 사회적 책임을 성찰하게 한다. 별것 아닌 말, 사소한 농담이 차별의 벽을 쌓아 올리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우리가 말과 글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존중의 언어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