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극복의 상징 허대만의 삶과 죽음을 담아내다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도전하다 스러진 허대만의 추모문집 『공존의 정치 허대만』(도서출판 BMK)이 발간됐다. 허대만은 1968년 포항에서 태어나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며, 서울대 경실련 대학생회 대표를 지냈다. 대학 졸업 후 포항으로 돌아와 경실련 활동을 이어가다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에 당선되며 주목을 받았다.
“청년이여 고향으로 돌아가 시장이 되자”
지역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는 소신을 품은 그는 “청년이여 고향으로 돌아가 시장이 되자”고 외쳤다. 또한 “기초의원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담대한 주장을 펼치며 고향 포항을 꿋꿋이 지켰다.
하지만 이후 포항에서 출마한 일곱 번의 국회의원 선거, 시장 선거에서 모두 낙선했고, 2022년 늦여름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사후(死後)에 그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다 스러진 상징으로 조명받았고,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이른바 ‘허대만법’ 추진을 위한 토론회와 강연회가 잇달아 열렸다.
정치 지도자의 면모와 성숙한 인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추모 문집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하나는 허대만의 인생 역정과 고뇌를 정리한 ‘허대만의 생각’이다. 이 내용은 그가 생전에 낸 두 권의 책, 『지역을 바꿔야 나라가 바뀐다』(2002), 『영일만의 꿈』(2012)에서 선별했기에 그의 생생한 육성을 느낄 수 있다.
또 하나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허대만과 친분이 깊은 13명이 쓴 ‘허대만을 생각한다’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허대만을 조명한 이 글에서는 그의 정치 지도자로서 면모뿐만 아니라 성숙한 인간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줄기찬 도전은 타고난 인품, 김태일 이사장이 말한 ‘마음이 여린 자의 용기’에 힘입어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죽음을 앞둔 허대만의 의연한 자세를 회고하는 대학 동기(김주옥 판사, 최재원 변호사)의 글은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공존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
허대만은 근본적으로 공존의 세상, 공존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다. 그가 생각하는 ‘공존’은 쉽고도 간명하다. “상대가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은 공존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가시밭길이었다. 공존의 세상을 향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고 논리는 체계적이었던 바, ‘공존’을 화두로 한 5편의 글이 이를 증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11년 제철소 현장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 활용할 수 있는 설비를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직접 만들어 공장을 세운 일화(「서경산업과 포스칼슘」)에서 그가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사업가였음을 알 수 있다.
허대만추모문집발간위원회 관계자는 “이 책을 통해 허대만의 고귀한 뜻과 꿈이 세상에 알려지고, 지역주의 극복과 공존의 정치를 향한 디딤돌이 놓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허대만
1968년 포항에서 태어나 대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경북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경실련 대학생회 대표를 맡았으며, 대학 졸업 후 포항 경실련에서 활동하다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포항시 송도동 기초의원에 출마해 전국 최연소로 당선되었다. 그 후 포항에서 국회의원선거와 시장선거에 일곱 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주의 극복과 공존의 정치 실현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포항지방의정연구소 이사, 포항KYC 대표,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북선대본부 정책기획실장,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서경산업(주) 부사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 한국산업인력공단 기획운영이사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 『지역을 바꿔야 나라가 바뀐다』, 『영일만의 꿈』이 있다.
2022년 8월 22일 지병으로 작고했으며, 그의 뜻을 기리는 행사로 고 허대만 1주기 토론회 ‘민주당,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 허대만 2주기 추모 특강(김태일, 허대만법 제정을 위한 과제) 등이 열렸다.
1995년 박민정과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