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현실 위에 투박한 연필로
그려 보는 새로운 문, 새로운 눈
그녀의 양육 방식에서 구현되는 열린 자세와 관용은 마치 그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하늘 같아라’ 정도일 만큼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건 그녀가 하늘처럼 높아서가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보다도 더 낮은 자리까지 거리낌 없이 무릎을 꿇은 채 구석구석 훑어내는 품이 넓어서인 것처럼 보인다. 픽션 같은 상황 전개 속에서도 그보다 더 픽션 같은 기발한 대처를 선보이는 나보희 여사와, 그런 엄마보다 한 수 위 전략을 펼치는 청출어람 아이들의 능력은 너무도 신선해서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이 독특한 가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깔깔깔 웃음 끝에 작은 희열과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모든 면에서 슈퍼우먼처럼 혹은 슈퍼맨처럼 살아가다 문득,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비롯되는 좌절감과 왠지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은 작은 실패들이 엉켜 하릴없는 공허함을 느낄 때, 나보희 여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선사하는 새로운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와 같은 감각은 나와 그리 다를 것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연결감, 동시에 그가 현실을 조물조물 만지는 전혀 다른 방식을 보고 느끼면서 별안간 눈앞에 열리게 되는 새로운 문, 그 문을 통해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테다. 꼭 갇혀 있는 것 같기만 했던 현실에 투박한 연필로 슥슥 자유롭게 선을 그리다 보면 금세 나타나는 그 문은 바로, 나 자신을, 아이들을,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다.
“살다 보면,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다른 너와 내가 어우러져 살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인다.”_본문 78쪽
비극에서 그치지 않고
희극으로 나아가는 힘
박티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힘은 현실의 바닥까지 뚫고 가는 거침없음이다. 그 바닥에는 엄마로서 느끼는 고뇌와 갈등뿐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겪어 왔던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 대학 시절 영양 불균형으로 영양실조에 걸리고도 이유를 몰라 일주일 동안 누워 있었던 일화에서부터 시작해, 어느 날 도로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공황 발작으로 응급실까지 갔다가 정신 병원을 다니게 된 일화까지··· 인간 나보희의 서사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전해지고 있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격언을 조각조각 체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그렇게 하루하루 일상 속의 작고 커다란 비극들을 일반적인 상상의 경계를 벗어난 희극으로 승화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야말로 대책 없이 터지는 웃음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그리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살아갈 힘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힘은, 살다가 별안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우리가 그 바닥에서 쉬이 가라앉지 않고 저기 저 지평선 너머를 대책 없이 용감하게 그려 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자기 자신을, 가정을, 세상을 바라보고 보듬어 내는 자세는 마땅히 ‘희극보다 더 희극 같은’ 강인함으로 불려 마땅하다.
“일부러 웃기게 그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 삶의 본능이 힘들었던 과거를 즐겁고 의미 있는 기억으로 재편집하라고 일렀다. 나를 웃긴 이 만화가 다른 힘든 누군가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혀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_본문 254쪽
정답 없는 삶이라는 여정 속
웃음이라는 유일한 답
“가정의 웃음은 가장 아름다운 태양이다.”-섀커리
지구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 새싹들을 두 손에 어르고 달래 키워 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이 땅의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 지금 이 순간 그녀들에게 필요한 건,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도록 돋아날 새로운 날개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집안일, 예상치 못한 갈등과 갖은 사건 사고 속에서도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손을 꼭 붙잡고 세상 끝까지, 우리가 상상해 보지 못한 경이로운 세계까지 데려가 줄 그 날개의 이름은 바로 웃음과 비움이다. “이렇게 키워도 사람 되나요?”라는 질문에 “안 될 수도…? 근데 누가 알아요? 이러다 위인이 될지”라고 넉살스럽게 외칠 나보희 여사가 야무지게 하루하루를 주무르는 두 손안에서, 당신이 찾는 바로 그 날개가 돋아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사람 된다’, ‘저렇게 해야 잘 산다’라고 정답을 말하기 바쁜 사회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용기를 두 손에 쥐어 줄 날개가. 너의 불완전함이 나의 불완전함과 만나 한바탕 불꽃놀이 같은 웃음으로 피어날 때, 갑갑하고 막막했던 속이 마법처럼 비워지고 가벼워지는 건 바로 그 웃음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정답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샹포르가 말했다. “모든 날들 중에서 가장 완전하게 잃어버린 날은, 웃지 않은 날이다.”라고. 이 책을 펼친 이상, 우리는 이제 단 하루도 쉽게 잃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불완전함을 인내하고 수용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그렇게 우리는 함께 어른이 되어간다.”_본문 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