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학 전설의 명작 드디어 복간
“이렇게 제자리로 되돌아온 것을 두고 부처는 깨친다고 했다.”
저자가 걸은 ‘부처의 길’에는 세계 여러 불교국가의 사찰이 세워져 있고 순례자나 탐방객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와 기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여행객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책은 순례의 기록이다. 2500여 년 전부터 있었던 불교 성지의 실제 모습과 현지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 몸의 눈으로 본 시선(視線)과 마음의 눈으로 본 시선(詩線)이 함께 녹아들어 눅진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안개가 강을 낳고 있었다. 강물이 안개 속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여울목을 몰아치며 흘러갔다. 그 여울목에서 갠지스 강물은 오래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마음 놓고 흐느끼고 있었다.”
_본문 ‘개구리 다음에 악어’ 중에서
-인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적 신화가 가득한 여행
이 책은 단순한 여정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백일 동안 걸으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저자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포개지면서 불교적 은유를 풀어내고 있으며, 그 속에서 부처의 일대기와 불교의 정신을 소개해주고 있어서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읽더라도 친근하게 접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나긴 도보 여행을 보조하기 위해 짐 싣는 릭샤를 계약해 두 명의 현지인들과 동행하는데, 부처가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카필라 궁을 빠져나올 때 사용한 천리마 ‘칸타카’의 이름을 이 릭샤에 붙여주었다.
박인식 작가는 네팔의 오지 마을을 거쳐 타망족, 타루족 등과 만나고 인도에서는 가장 가난한 불가촉천민이 모여 사는 비하르 주를 걸었다. 인도 대부분의 부처의 길은 비하르 주에 있었다.
부처의 탄생지 룸비니에서 시작되는 여정은 숫도다나 왕의 아들로 태어난 부처가 계절마다 다르게 머물렀던 카필라 성을 찾아보고 어머니 마야데비를 일찍 여읜 의미를 고찰해보기도 하며 부처의 일생을 좇아가며 인도 역사의 한 부분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코살라국이 침공했을 때 카필라국의 마하나마 왕이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석가족의 멸족을 막은 신화적인 이야기와 갠지스 강에서 화장하고 목욕하는 문화도 작가의 시선을 거치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나를 만나기 위해 100일 동안 걸었다
“부처가 죽었다. 제자들이 구슬피 울었다. 어미 잃은 어린 새들 같았다. 그러자 죽은 부처는 두 발을 관 바깥으로 내밀어 보였다. 맨발이었다. 그의 맨발이 된다. 그 맨발이 걸어간 ‘맨발의 땅’을 따라 걷는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처의 맨발은 겸허한 삶이나 무소유 같은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오랫동안 먼 길을 걸으며 인간적인 부처를 만나고 맨발의 땅에서 얻는 깨달음을 갈구한다.
어쩌면 깨달음은 걸으면서 길 위에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고행이 아니라 중도가 답이다. 작가는 깨달음을 종교적 차원의 진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풀어내고 있다.
결국에는 ‘나 자신을 찾는 여정’에 가까운 이 책은 “부처의 행적과 불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입소문이 날 정도로 부처의 탄생부터 깨달음과 최초의 전법 그리고 열반의 순간까지 빠짐없이 걸으며 맨발로 그 땅을 밟아가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부처의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과의 뭉클한 이야기
첫 만남은 룸비니에서 생겼다. 모델 출신이라는 오스트리아 여인이 ‘부처의 길’을 따라나서려고 한 것이다. 간신히 만류하고 안개 속에서 작별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네팔 고비언스 마을을 지나며 여신의 이름을 딴 미누카라는 열여섯 아가씨와 함께 길을 걷기도 하고, 코뿔소가 출몰한 마을에서 코뿔소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이든 자신이 다 도와줄 수 있다며 과도하게 친절한 사람들에게 질문 공세를 당하는 시달림도 당한다.
골라가트에서는 꽃필라라는 여인과 분홍 메밀꽃밭에서 감자 도시락을 까먹고 ‘메밀밭에서 가진 아이’라는 뜻의 ‘파파드’라는 이름의 아이들이 많은 이유를 듣고, 전쟁을 일으킬 만한 미모로 나라를 먹여살리기도 한 암라팔리의 바이샬리에서는 부처에게 바쳤다는 망고나무숲을 지나가고, 현란한 색깔의 물감을 뿌려대는 ‘홀리 축제’에 몰래 참가하려다가 머물던 사찰의 주지 스님에게 혼나기도 한다.
힐사라는 소읍을 거쳐 날란다까지 가는 중간에 ‘고하라’라는 땔감 연료를 만들기 위해 소똥을 열심히 굴리는 소녀들을 만나서 원시의 불탑처럼 쌓고 있는 고하라 탑들의 장관을 목격하고, 다람푸르 마을에서는 백 살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귀향한 우펜드라의 지극한 봉양을 목격하며 귀중한 식수로 ‘신의 눈물’인 우물물을 얻는다.
로이가 끓여준 유미죽을 맛보며 수자타가 부처에게 바친 유미죽 일화를 떠올리고, 아킬레스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느닷없이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는 기쁜 소식도 듣는다.
마크 트웨인이 ‘전통과 전설보다도 더 오래된 도시’라고 말했던 바라나시에서 힌두교도들에게 특별한 의미의 갠지스 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인 가트가 하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보고, 사르나트에서 부처가 열반을 맞은 쿠시나가르까지 삼백 킬로미터의 시골길을 걸으며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며 감탄한다.
마지막으로 열반을 위해 고향 카필라바스투로 향하던 부처의 마음을 느끼며 ‘부처의 길 순례’를 마무리한다.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은 이렇다.
“모든 것은 변한다. 다만 끝없이 정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