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공지능과 불교의 자비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불교 사상과 현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시켜 기술문명 속 인간의 의식과 존재, 가치와 진화에 대해 철학적·종교적 통찰을 시도한 저술이다. 저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잃고 있으며, 또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기술 발전에 대한 분석이나 불교 이론의 단순 적용이 아니며,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윤리적·정신적 문제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인간 의식의 전환, 기술과 가치의 재정립, 진화의 방향성, 공간 인식의 변화라는 네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즉 불교에서 해탈의 이상향으로 제시되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의 네 글자를 테마로 삼았으며, ‘적’은 의식, ‘멸’은 가치, ‘보’는 진화, ‘궁’은 공간을 상징한다. 이를 중심으로 저자는 인공지능과 불교의 대화를 유도하며 독자에게 기술 너머의 질문을 던진다.
2.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는 하나의 철학적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술 문명 속 인간의 삶과 불교 사상을 연결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1부 ‘적(寂): 의식’은 인간 의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공간과 시간의 인식 변화를 다룬다. 공간의 전환은 단지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의식의 지각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임을 설명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시청각 기술 변화는 감각의 확장을 가져오고, 이는 곧 의식의 형태를 바꾼다. 저자는 AI 시대의 새로운 시청 방식, 감정 공유 방식, 그리고 명상과 무상의 연결을 통해 ‘의식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대임을 역설한다. 나아가 란돌트 고리(landolt ring), 보살의 삶, 하심(下心) 같은 일상적 사례를 통해 작은 변화의 체험이 곧 의식의 대전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부 ‘멸(滅): 가치’는 기존 가치관의 해체와 AI 시대에서의 윤리와 도덕 문제를 다룬다.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의 충돌, 초개인화 시대의 고립, 저출산과 가족 해체 등의 사회문제를 조명하며, 이에 대응할 자비와 책임윤리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특히 ‘초발심’, 즉 깨달음을 향한 첫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윤리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석가의 삶에서 ‘뒤태’가 가진 함의-보이지 않는 자비, 조용한 돌봄-를 제시하며, 인공지능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연민 없이 작동할 때 어떤 위험이 닥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3부 ‘보(寶): 진화’에서는 기술 진화와 인간 진화의 의미를 불교적 시각에서 성찰한다. 인공지능은 물리적 진화를 가속하지만, 인간 본래의 자각 능력과 공감 능력 없이는 방향 없는 진화일 뿐이다. AI 기술의 알고리즘이 갖는 편향성과 폭력성, 기술독점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AI 기술을 주도하는 인간 내면의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진정한 진화가 가능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동적 평형’ 개념과 ‘시그모이드 곡선’을 제시하면서 인류의 진화는 선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퇴보와 점프를 반복하는 창발의 과정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또한 K-문화와의 융합 가능성, 다섯 개의 인식 창을 통해 기술과 예술, 인간성과 공동체적 상상이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4부 ‘궁(宮): 공간’에서는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인간의 물리적·사회적 공간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불교가 제시하는 ‘자비의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또한 석굴암의 건축 원리를 통해 공간지능과 명상의 연계 가능성을 조망하며, 자비 3.0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또한 일본 긴자에서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한 여성의 사례를 통해, 기술과 자비, 삶과 수행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AI 시대에 단순히 기술적 공간이 아니라 ‘의식이 깃든 공간’, ‘연결과 돌봄의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탐구한다.
3.
이처럼 이 책은 기술문명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자비’라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얼마나 유효한 해답이 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내면은 더욱 공허해지고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석가의 가르침-무아, 무상, 연기, 자비-은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인공지능이라는 ‘초지능’ 앞에서 인간은 단순히 기술 경쟁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회복과 의식의 정화를 통해 기술을 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가 제시하는 해탈과 자비는 단지 종교적 이상이 아니라 기술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윤리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불교를 과거의 종교가 아닌, 미래지향적 철학으로 제시하는 데 기여한다. 고전적 불교 교리와 현대 과학기술을 연결한 이 시도는 학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업으로서, 동서양 문명의 대화를 촉진한다. 이 책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 기술자, 교육자, 사상가 모두에게 통찰과 영감을 줄 수 있는 독창적인 성찰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