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행정법』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제목은 오랫동안 필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국순옥 선생님의 『자본주의와 헌법』이 무의식의 지층에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제로 정한 “비판 행정법 입문”에서 비판의 의미는 자명하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서문에서 말한 그 비판이다. 실제로 이 교과서가 그 정신에 충실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노력은 해보았다.
15년 전에 썼던 낡은 책-강경선/이계수, 『행정법1』, 방송대학교출판부, 2008-을 다시 펼치며 이를 다듬기 시작한 때가 2023년 가을이었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행정법 수업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종강 후 자타의 평가를 종합해보니 기존의 책을 본격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학기 중에는 강의준비와 학사업무에 머리와 손발이 묶여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가 2024년 9월부터 1년간 연구년을 맞이하여 오롯이 개편작업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자본주의와 행정법』이다. 그래서 한국 행정법령과 판례해설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자본주의 비교행정법이라는 관점을 취했기 때문이다. 비교행정법이라고는 하나, 필자의 전문 연구 영역이 독일법이므로, 인용한 문헌, 사례·판례의 상당부분은 독일 행정법(학)에서 취했다. 필자의 능력 밖에 놓여 있는 프랑스 행정법, 미국 행정법 문헌의 이용은 최소한에 그쳤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제1권과 제2권을 분권한 이유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필자는 교과서가 벽돌책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입문적 역할을 할 책은 분량으로 독자들을 질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내용을 보완하다보니 원고는 점점 더 무겁고 두꺼워졌다. 그래서 일단 나누었다. 나누고 보니, 결과적으로 제1권은 ‘입문의 입문’의 성격을 더욱더 강하게 띠게 되었다. (행정)법 비전공자가 혹은 법학의 초심자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마음일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작업했기 때문이다. 모쪼록 『자본주의와 행정법 (1)』이 법학개론의 교재로도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제2권은 행정법총론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제1권에 비해 전문적인 설명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어쨌건 법학교재로서의 역할을 이 책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두 권을 개정할 기회가 생긴다면, 작업은 ‘따로 또 같이’ 할 생각이다. 각 권이 가진 개성과 특징을 더욱더 선명하게 부각하는 쪽으로 보완도 해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분권은 앞으로의 개정작업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포르스토프(Forsthoff)는 자신의 『행정법1』 제10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과서가 교과서 다우려면 무엇보다 읽히는 책이 되어야 한다. 가독성을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교과서(Lehrbuch)와 ‘핸드북’(Handbuch)을 혼동하지 말라는 말도 한다. 세세한 사항까지 모두 다 서술하느라 정작 도그마틱적 구상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만드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려면 당연히 쟁점의 엄격한 선정이 필요하다. 실정법을 도그마틱적 구상 안에서 서술하는 것이 교과서의 과제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지배적 견해/통설/공통의견’(communis opinio)에 끼워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는 말도 덧붙인다. 맞는 말이다. “지배적 견해는 지배계급의 견해이다”(Die herrschende Meinung ist die Meinung der Herrschenden)라는 경구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필자에게 더더욱 와닿는 조언들이다. 초고를 모두 완성한 뒤 포르스토프의 서문을 다시 읽었을 때, 아 이 머리말이 이 책 『자본주의와 행정법』의 집필의도와 관점을 상당부분 설명해주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무릇 책은 저자와 그가 속한 학문공동체의 공동작품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모두 작고하신 서원우, 김동희, 최송화 교수님의 학은에 감사드린다. 구순이 넘은 연세에도 행정법학을 향한 일생 구도자의 길을 묵묵히 걷고 계신 김철용 교수님께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제일 먼저 이 원고를 읽어준 김학진 박사님, 필자의 글쓰기를 언제나 응원해주는 김종서 교수님, 아주 오래전부터 출간을 독려해준 김정환 교수/변호사님, 일반독자 혹은 수험생의 입장에서 원고를 검토해준 조제희 변호사님, 송지우 변호사님, 미국 행정법 파트를 꼼꼼히 검토해준 정인영 박사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22년 세상을 떠난, 나의 선생이자 친구 그리고 동지였던 마틴 쿠차(Prof. Dr. Martin Kutscha)를 기억하며 머리말을 마친다.
2025년 8월 15일
이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