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출간의 의의
오래전에 윤치호는 의회설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때에 회의진행법 교본(매뉴얼)이 한국에 필요함을 인식하고, 헨리 로버트가 쓴 이 책의 일부를 번안한 『의회통용규칙』(議會通用規則)을 발행하여(황성신문사, 1898) 독립협회에서 사용하였다. 이것이 한국에서 최초로 출판된 회의진행법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 윤치호는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용어를 처음으로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의회의 파행, 회의 도중 퇴장·점거·고성, 그리고 소수 의견의 묵살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목도하고 있다. 특히 국회나 지방의회는 물론 정당 내부의 결정 과정에서도 합리적 의사절차의 부재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공동체를 세워가는 중요한 사역의 현장인 제직회, 당회, 공동의회, 노회와 총회 등의 회의에서 종종 절차의 생략, 발언권의 제한, 일방적 결정, 정서적 갈등의 표출 등이 반복되며, 회의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장이 아니라 불신과 분열의 통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의진행법』은 단순한 회의 기술서가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다수의 뜻을 따르되 소수의 발언 기회를 보장하고, 감정과 목소리가 아닌 절차와 규칙에 따라 논의를 정리하며, 서로 다른 입장이 생산적으로 부딪힐 수 있도록 돕는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권면한 “모든 일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는 말씀처럼, 회의는 다툼의 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질서 있게 함께 듣고 결정하는 예배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제12판의 한국어 출간은, 한국 교회가 신앙 공동체다운 회의 문화, 곧 권위는 있으나 권위주의는 없는, 민주적이면서도 경건한, 다툼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회무를 회복하는 데에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회의 운영의 기술적 개선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회의 문화에 품격과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의 출간 이력
Robert’s Rules of Order for Deliberative Assemblies
(이 책 표지의 짧은 제목은 Robert’s Rules of Order였다.)
제1판: 1876년 2월
제2판: 1876년 7월
제3판: 1893년
Robert’s Rules of Order Revised
제4판: 1915년(원저자가 완전히 새로 저술한 것으로서 분량이 75%가량 늘어났다.) 제5판: 1943년
제6판: 1951년(75주년 기념판)
Robert’s Rules of Order Newly Revised
제7판: 1970년(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개정하였으며, 분량이 두 배 이상 으로 늘어났다.)
제8판: 1981년
제9판: 1990년
제10판: 2000년
제11판: 2011년(‘새천년’판)
제12판: 2020년
※ 1876년 초판을 발행한 이래 『로버트의 의사규칙』(Robert’s Rules of Order)과 『(개정) 로버트의 의사규칙』(Robert’s Rules of Order Revised)은 지금까지 600만 부 이상 보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