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가 평생에 걸쳐 고민한 질문, “무엇을 깊이 생각할까”
『손자참동』의 저자 이지(1527~1602)는 명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평론가였다. 그는 성리학적 권위와 형식에 반기를 들고, 유자의 비현실적인 인식을 비판했다. 특히 무(武)를 경시하고 문(文)만 추앙하는 당시 유가 사상가들의 경향은 이지에게 유학의 공허함과 비현실감을 체감시켰다. 경직된 당대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그의 삶은 권위와 이념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자 고투였다. 그는 손자가 제시한 ‘무엇을 깊이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평생에 걸쳐 고민했다. 해결책은 본인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손자의 가르침 아래, 그는 자신이 처한 시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정답’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동시대의 혼란과 맞닿아 있는 자신만의 병법을 펼쳐 나간다.
이지가 살던 시기는 외적의 침입, 조정의 권력 투쟁 등이 끊이지 않던 혼란의 시대였다. 병법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지혜였고, 이지는 그것을 인간과 사회를 성찰하는 철학으로 재해석했다. 이지의 병법관은 ‘전쟁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로 집약된다. 그는 민생을 가치판단의 최우선에 두었기 때문에 항상 전쟁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을 필연적인 악으로 보면서도, 그 안에서 어떻게 백성을 지키고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에게 전쟁의 최종 목표는 폭력을 멈춰 인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전쟁을 넘어선 병법, 인간을 위한 학문
『손자참동』이 단순한 병법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자 이지가 당대 사회의 모순과 내면적 고뇌를 병법의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기존의 병가 사상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면, 이지는 병법의 원리를 사회와 인간의 복잡한 문제에 확장 적용한다. 그에게 병법은 개인의 수양과 국가의 통치를 아우르는 학문이었다. 그는 군주의 권력욕과 명분에 갇힌 전쟁을 비판하고, 오직 백성의 안위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진정한 군주의 도리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지의 관점은 『손자참동』은 단순한 군사 교본이 아닌,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문학적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지는 문(文)과 무(武)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위선이 혼란스러운 사회의 문제점을 더 심화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당시 만연했던 중문경무(重文輕武) 풍조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유학자들이 병서를 천박하게 여기고 군사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가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손자참동』은 공허한 이론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당대 지식인들을 향한 통렬한 비판이자, 혼란의 시대 속에서 국가와 백성을 구할 길을 모색한 실천적 지식인의 사유의 결정체다.
이지의 사유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지가 살던 명말 혼란기는 2025년의 우리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갈등과 분열, 실리 없는 논쟁에 갇힌 정치적 공방, 그리고 극단적 이분법으로 치닫는 여론은 이지가 비판하던 유가의 위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지는 『손자참동』을 통해 우리에게 “이 싸움은 꼭 필요한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지는 무기가 발달하고 전쟁의 양상이 복잡해져도 그 원칙과 함의는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손자참동』이 현재에도 유효한 이유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깊이 있는 분석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혜롭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이지의 철학은 이념과 명분만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