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붓이 머문 바다로, 시인과 함께 떠나는 특별한 여행
기차의 발명은 인간의 시선을 바꾸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된 시대. 사람들은 이전에는 닿을 수 없던 풍경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바다는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육지의 끝, 세계의 경계, 그 너머를 향한 동경.
화가들 역시 그 꿈에 응답했다. 기계문명이 열어준 길을 따라 새로운 풍경을 찾아갔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그렸다. 풍경화를 넘어 감정의 표면과 내면을 동시에 담아낸 그림들. 단지 신선한 그림 소재가 아니라 스스로도 바다에 매혹되어 삶의 거처를 바닷가로 옮긴 화가들도 많았다. 잔잔하고 명랑한 여름 바다부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 신화 속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다까지, 바다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꿈틀대는 생명력으로 화가들의 붓을 들어올렸다.
인생의 쓸쓸함을 말없이 위무하는 바다로 가자!
김경미 시인은 ‘바다’라는 보편적이면서도 강력한 주제를 중심으로 화가 54명의 명화들을 엮어냈다. 바다는 여행이자 그리움, 치유이자 불안,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시인은 바다를 그린 그림들을 따라 직접 현장을 찾고, 화가가 그 바다를 바라봤을 법한 지점에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그 여정 속에는 니스를 향한 비행, 산토리니에서의 공황과 회복, 트루빌에서의 바람 냄새가 녹아 있다. 미술, 여행, 자기성찰이라는 세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글맛에도 감칠맛이 넘친다. 단순히 그림을 묘사하고 여행의 감흥을 소개하는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독자의 상상과 감정을 자극하며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낸다. 시인과 함께 바다 여행을 다녀온 듯 가슴속이 시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