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의 저자인 카르마 렉세 쏘모는 미국의 대학 교수이자 비구니로서 불교계 내 여성의 권리 신장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는 세계적인 불교 학자이다.
불교 전통 속 여성들의 위치, 역할, 그리고 변화를 총체적으로 조명한 이 책은 단순히 ‘여성 문제’를 주변 주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핵심 교리와 제도, 역사 속에서 여성 수행자와 재가 여성들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주변화되거나 재부상했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중 시공간 비교이다. 저자의 시공간은 초기 인도 불교에서 시작해 남아시아·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내륙 아시아, 서구까지 시야를 확장하며, 각 지역과 시대마다 여성 수행자에게 부여한 규범과 기회를 상호 비교한다. 동시에 문헌 분석과 현장 연구를 병행하여, 팔리어·산스크리트어·중국어·티베트어 경전과 주석서 속에 나타난 여성상, 그리고 실제 여성 수행 공동체의 일상을 나란히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학술적 연구서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활동가적 면모가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구족계(비구니 수계) 부활, 교육 기회 확장, 국제 네트워크 형성 등 실천적 제안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이론과 현장이 긴밀히 상호 연결되어 전개된다.
2.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문에서는 불교의 여러 전통과 여성들을 연구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역사적 기록의 공백, 성별 구조의 지속,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해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1장-초기 인도불교에서의 여성〉에서는 초기 불교 여성들의 존재와 문헌 속 묘사를 분석한다. 마하프라자파티의 출가 이야기는 여성 출가 허용의 상징적 사건이자, 동시에 여덟 가지 특별계율(팔경법)과 같은 제약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부처의 ‘승가 쇠퇴 예측’ 구절과 그 해석, 그리고 초기 비구니들의 법 전파와 해탈 성취 사례가 함께 조명된다.
〈2장-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불교 여성〉에서는 상좌부 불교의 여성관과 제도적 현실을 스리랑카, 버마(미얀마) 등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탐구한다. 가정과 수행을 병행하는 여성, 재가 여성들의 신앙 실천, 그리고 버마 여성들의 종교적·사회적 활동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3장-동아시아의 불교 여성〉에서는 중국 초기 불교에서 여성 출가 제도의 형성과 깨달음 가능성 논쟁, 한국 불교 여성의 역사적 기여와 제약, 일본에서의 여성 출가 금지와 복원 운동이 다뤄진다. 이와 함께 21세기 동아시아 여성 불교인의 변화된 위상도 함께 다룬다.
〈4장-내륙 아시아의 불교 여성〉에서는 티베트 여성 수행자의 역사와 ‘망명 속의 자유’라는 현대적 경험을 서술한다. 또한 부탄, 몽골, 러시아 불교권 여성들의 활동과, 비구니 구족계 부재 속에서의 불교 교육·수행 현실이 제시된다. 아울러 ‘깨달음을 통한 변화’라는 주제로, 사회와 수행의 상호 영향도 탐구한다.
〈5장-서구의 불교 여성〉에서는 서구에서 불교를 수용·재해석한 여성들의 선구적 역할을 다룬다.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 젠더 평등 담론, 불교와 성(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의, 문화 변용 속 갈등, 그리고 차별을 기회로 전환한 사례들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6장-문화를 넘어선 여성 수계〉에서는 여성 구족계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와 현대적 쟁점을 분석한다. 네팔, 스리랑카, 태국의 상좌부 전통 여승들, 동아시아 비구니 수계, 티베트 전통의 수계 논의가 지역별로 비교된다.
〈7장-풀뿌리 혁명: 불교 여성과 사회 운동〉에서는 먼저 ‘선한 존재’로 머무를 것인가, ‘선한 일을 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서, 불교와 젠더 정의, 다국적 여성 네트워크, 사회 정의 운동과 불교 수행의 접점, 그리고 포용과 진정성을 담보하는 사회 변화 전략이 제시된다.
결론에서는 아시아 불교 페미니즘의 인식론적 교차점을 분석하고, 불교의 성별 구조를 재검토한다. 이를 통해 초국가적 차원의 성평등 이상과 실현 경로를 제시하며,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를 잇는 변혁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3.
이와 같이 이 책은 경전과 율장, 역사적 사건, 현대 사례를 종합하여 불교 전통 속 여성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이를 통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제도와 실제 역사·교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면서 전통과 현실의 간극을 밝히는 종합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역별 비교를 통한 구조 분석과 경전 분석에 더하여 저자가 직접 조사한 수도원·여성 수행 공동체의 현장 이야기가 풍부하여, 학문적 깊이와 생생한 현장감이 동시에 확보되고 있다. 또한 불교를 단순한 신앙 전통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회적 장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종교의 본질적 가치와 현대 사회의 평등 이상을 연결하는 지적·실천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광범위한 불교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핵심 원전과 최신 연구를 아우르고 있어, 불교의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표준 입문서가 될 것이다. 학문적이면서도 명료한 문체 덕분에, 불교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부터 종교, 젠더, 인권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