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
『하나가 걷는 세상』은 특별한 안내문으로 시작한다. 구불구불한 길에서 사람들이 놓고 간 물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보인다. 그리고 트웰브사운즈프로젝트의 음악과 함께 책장을 펼치면 레몬나무가 있는 집에서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하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하나의 일상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폭격이 있는 날이면 집 안 구석에 숨어 있어야 했고, 지금은 홀로 살아남아 마실 물과 먹을 만한 음식을 찾아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가 쓰레기통 안에서 자투리인형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 책은 글쓴이가 써 내려간 이야기의 감정을 색연필화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레몬나무와 하나의 대화를 통해 느리지만 단단한 성장의 씨앗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다 한밤중 폭격 장면에서는 혼란과 긴장감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거대한 장벽 앞, 어른들의 절박한 외침은 깊어지는 갈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와 자투리인형의 우정은 그 안에서도 여전히 연대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전쟁 묘사가 아닌, 아픔 속에서도 다 함께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진심을 전한다.
내일을 기대하기 힘든 모두의 ‘하나’에게
비극을 잊지 않는 것이 곧 우리의 희망이 된다
‘하나’는 아랍어로 ‘기쁨(Hana)’이라는 뜻으로, 주인공 하나는 가족과 집, 그리고 레몬나무를 그리워하며 언젠가 되찾게 될 기쁜 순간을 향해 살아간다. 라디오와 오디오북 등의 구성작가로 일하며, 다양한 현실의 목소리를 기록해 온 글쓴이는 이 책을 기획하며 처음에는 ‘전쟁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작가이자 번역가인 로아 샤말락의 글을 읽고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에서 줄곧 등장하는 레몬나무는 팔레스타인의 가정 곳곳에 자라나는 정겨운 나무이자 풍요와 희망의 상징이다. 글쓴이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도 멈추지 않는 하나의 걸음을 통해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전한다. 비록 전쟁은 우리 힘으로 당장 끝낼 수 없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레몬나무로 비유되는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이 책을 통해 하나가 걷는 세상을 함께 따라가며,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조금씩 달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