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만 보이는 특이한 기생 존재
그 존재를 피하기 위해 혼자가 되었다
픽싱은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 나타났다. 이후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었다. (12면)
국숫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버는 주인공 ‘수온’. 수온에게는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 몸에서 자라는 특이한 기생 존재 ‘픽싱’을 볼 수 있다는 것. 검은 동그라미, 반투명 젤리, 고양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픽싱을 보고 수온은 놀라고 무서워한다. 그리고 픽싱을 보는 데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 나타난다는 것. 규칙을 깨달은 이후로 수온은 타인에게서 관심을 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년 전 절연했던 ‘다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온다. 다미의 이유 모를 잠수로 관계가 끊겼기에,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다미의 느닷없는 말에 수온은 당황한다. 그러고는 다미의 오른쪽 어깨 위에 붙어 있는 픽싱인 아기 고양이를 떠올린다. 다미는 왜 이 년 만에 다시 만나자고 연락한 걸까? 픽싱을 보기 싫어 혼자가 된 수온은 다미와 관계를 이어 갈까?
한편 국어 수업 시간에 수온은 조별 발표 과제를 받게 된다. 누구와 조별 과제를 할지 고민하던 수온의 눈에 ‘도경’이 들어온다. 훈훈한 외모를 가졌지만 아이들을 차갑게 대하는 탓에 ‘아웃사이더’가 된 도경. 시선이 마주치자 도경이 먼저 다가와 조별 과제 같은 조를 하자고 제안한다. 남 일에는 무관심한 도경에게서는 절대 픽싱을 볼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수온은 고민 끝에 도경과 같은 조가 되기로 한다.
너의 우주가 나에게 닿는 순간
마음속 상처가 특별한 존재로 바뀌는 기적
“……네가 궁금해졌어.”
도경의 나직한 목소리에 잠잠했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픽싱을 마주하기 직전처럼 아찔했다. 드디어 보이는 건가. 도경의 픽싱이. 나는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눈을 떴다. 하지만 도경의 몸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의 이야기가 알고 싶어.” (129~130면)
수온과 도경은 함께 수행 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만난다. 수온은 도경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독특한 모습의 도경은 자꾸만 궁금증을 자아낸다. 양자역학과 우주를 좋아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존재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도경. 픽싱을 회피하던 수온은 도경의 몸에도 픽싱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안부와 걱정을 나누며 조금씩 마음을 열던 수온은 도경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말을. 픽싱을 보는 사람이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 수온은 도경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된다.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아빠와 함께 살며 내면에 상처가 생긴 수온은 픽싱을 보면서 타인과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타인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경을 만나게 되면서 수온은 점차 친구 다미와 국숫집 사장님 같은 타인을 마주하게 되고, 나아가 그들 몸에 붙어 있는 기생 존재 픽싱에도 관심을 둔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맞닿을 때, 내면의 슬픔과 아픔이 특별한 존재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내 안의 어둡고 부끄러운 감정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일
“그런데 도경아, 어째서 자신의 픽싱은, 자신의 도플갱어는 볼 수 없는 걸까.”
“아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 아닐까.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까.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마음을 나누라고.” (206면)
슬픔과 외로움, 질투심과 열등감, 수치심과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를 내면의 동굴로 밀어 넣곤 한다. 그 감정을 외면하고 없애기 위해 우리는 온갖 방법을 쓴다. 『너의 우주가 들린다면』 속 인물들도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기생 존재 픽싱으로부터 벗어나고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부정적인 감정 또한 자신을 이루는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타인을 만나 자신의 우주를 유연하고 단단하게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픽싱을 받아들인다. 사람의 마음을 ‘작은 우주’로 비유하고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우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에 뭉근한 용기를 불어넣는다. 내면의 낯선 존재를 힘껏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너의 우주가 들린다면』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다정한 친구 같은 소설이다.
▶ 줄거리
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온’에게는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 몸에서 자라는 특이한 기생 존재 ‘픽싱’을 볼 수 있다는 것.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 보이는 픽싱은 고양이, 투명 젤리, 식물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기 눈에만 드러나는 픽싱을 마주하기 싫어 타인에게 관심을 끊기로 한 수온. 그런데 우연히 수행 평가를 같이 하게 된 독특한 아이 ‘도경’이 자꾸만 궁금증을 자아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