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스트리밍 서비스,
당신의 슬픔을 재생해 드립니다.”
평범한 고등학생 은하가 참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죽고 싶다’는 이야기. 하지만 친구 혜주는 은하의 마음도 모르고 말끝마다 “죽겠다” “죽을 것 같아”를 남발한다. 더 이상 참지 못했던 어느 날, 혜주에게 죽는 게 뭔지 아냐며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날 저녁 은하는 며칠 전 아빠의 코트 주머니에서 발견한 ‘슬픔 스트리밍’ 명함에 적힌 서비스를 신청해 자신의 슬픔을 들려준다.
사 년 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엄마를 잃은 은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생활하는 아빠와 동생 우주가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엄마를 잃었는데 왜 눈물이 나지 않을까? 스스로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슬픔 스트리머는 은하의 이야기를 듣고 화 또한 슬픔의 형태라고 말한다.
사실 스트리밍할 슬픔 따위는 없어요. 화라면 모를까. 저는 늘 화가 나요.
- 본문 중에서
첫 스트리밍을 하고 며칠 뒤, 은하는 학교에서 빠져나와 엄마가 있는 평화 영원 공원으로 향한다. 엄마의 나무 아래에서 과거를 떠올리던 은하는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동생을 잃은 은강, 남편을 잃은 기연 그리고 친구를 잃은 도우는 각자의 슬픔을 안고 “안녕하게 안녕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안녕 클럽’을 운영한다. “슬퍼하는 법도 죽음을 대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며 남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야기한다.
젓가락질도 배우고 걸음마도 배우는데 우린 슬퍼하는 법도 죽음을 대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는 거지. 이상하지 않아? 어찌 보면 모두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일인데. 우리는 모두 살면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슬퍼하게 되니까 말이야.
- 본문 중에서
‘안녕 클럽’에 놀러 오라는 은강의 말에 은하는 슬픔을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는 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울지 못하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나눌 슬픔이 어디 있겠는가. “슬픔이니 죽음”이니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녕 클럽을 만나고 스트리밍을 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마주한 은하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슬픔 따위는 없어요. 저는 늘 화가 나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
그리고 다시 걸어 나가는 용기
갑자기 동생 우주가 사라졌다. 우주는 당분간 찾지 말아 달라는 문자 하나만을 남겼다. 은하는 우주를 찾으러 다니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우주와 마주한다. 항상 밝기만 했던 우주도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되돌아온 우주의 스트리머가 되어 슬픔을 들은 은하는 우주와 마주 앉아 한참 눈물을 흘린다.
각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며, 안녕하는 법을 배우는 은하와 우주 그리고 안녕 클럽 멤버들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을까?
“안녕, 안녕, 안녕.”
나는 뒤돌아 다시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 본문 중에서
빨간색은 배우자, 보라색은 친구나 친척, 금색은 부모님, 주황색은 형제자매, 흰색은 아이. 색색의 서로 다른 슬픔이 한데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 은하와 친구들은 각자의 빛깔로 힘차게 걸어 나가며 내일의 안녕을 그린다.
나는 앞서 걷는 우주의 등을 밀어 주었고 봄이가 뒤에서 내 등을 살며시 밀어 주었다. 그 힘에 떠밀리듯 나는 좀 더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도착 지점까지는 아직 까마득했지만 열심히 걸어 볼 작정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니 엄마가 보고 싶었다.
- 본문 중에서
『안녕하게 안녕하는 법』은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 그리고 다시 걸어 나가는 용기를 말한다. 박슬기 작가는 커다란 슬픔을 마주하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슬픔을 서로 나누면서 비로소 다시 살아가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소설은 단순히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잃거나 꿈 앞에 좌절하거나 친구와의 관계가 힘든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슬픔과 나의 슬픔이 이어져 서로에게 기댈 어깨가 되어 주기를. 또 함께 슬퍼하고 다독이며 잘 살아가라고 서로의 등을 밀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