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가
과거와 미래의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묻다
각 작품은 저마다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지에 중심을 둔다. 표제작 「고스트 테스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고스트 테스트’란 컴퓨터, AI, 로봇 프로그램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테스트이다. 모비딕이라는 이름의 상담프로그램 ITTIA303은 의식 확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안보국으로부터 삭제당할 위기에 처한다. 안보국 요원 K는 모비딕이 “게임 속 아바타처럼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일 뿐”이기에 초기화시킨 후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라고 말하지만, 모비딕을 만든 구 박사는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로서 어느 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인가를 따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옹호한다. 가상의 프로그램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만남」에서 작가는 시공간을 임진왜란 시기 조선으로 옮겨놓는다. 진주성이 함락되기 전, 장수 여덟이 의령에 모인다. 진주성을 지킬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를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내놓는 장군들. 권율은 다 함께 진주성으로 향하자는 제안을 하지만 곽재우는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라며 반대한다. 죽주산성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온 황진은 곽재우에게 적의 기세가 무섭다고 물러나면 장수 된 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말하며 입성을 선택한다. 곽재우와 황진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의 근간에는 자기 정체성과 신념이 놓여 있다.
▶ 시간을 가로질러 펼쳐지는 모험
도전과 좌절에도 끝내 길을 찾는 존재들
황인규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이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 「미지의 항해」는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들의 항해기를 통해, 미지의 땅을 향한 인간의 도전과 위기를 그린다. 17세기, 한스는 함선 브레다호를 타고 자바로 향하는 여정에 참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선원들 사이에서 배가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소문이 돈다. 선장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뜻을 밝히고, 감독관과 갈등을 빚는다. 설상가상으로 배가 산호섬에 좌초되자 선원들은 불안에 떨며 선장을 선장직에서 박탈하기까지 한다. 과연 선장은 선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항로를 통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
「인류 비행에 관한 몇 개의 보고서」는 서간 형식의 소설로,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일곱 명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700년경 존재했던 코르도바 왕국의 압바스 이븐 피르나스는 새를 관찰한 후 날개와 꼬리를 만들고 활공에 도전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육신 또한 망가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스승의 서재에서 이븐 피르나스의 기록을 보고 인간의 비행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구를 고안하고 인체를 공부한다. 이 외에도 열기구를 최초로 발견한 조셉 몽골피에, 동력비행을 최초로 성공한 구스타브 릴리엔탈,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비행의 꿈을 지인에게 편지로 전한다. 마지막 편지의 주인공은 2112년 우주로 간 천체물리학자 진우헌으로, 외계문명의 흔적을 발견한 그는 웜홀로 들어가기 직전 딸에게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담아 이별의 편지를 보낸다.
이처럼 황인규의 소설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모험과 도전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넘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전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독자인 우리 역시 그러한 여정의 일부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