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금 동화집 『찰칵! 찰칵! 이야기 돌할망』
-제주 전통과 여성의 강인함을 품은 따뜻한 성장 동화
최순금 작가의 『찰칵! 찰칵! 이야기 돌할망』은 단순한 아동문학을 넘어, 제주의 자연과 전통, 그리고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을 온전히 담아낸 작품이다. 이 동화는 제주도의 오래된 설화인 ‘혼인지 전설’을 모티브로 삼아, 그 위에 현대적인 상상력과 따스한 시선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실제 지명 ‘혼인지’를 배경으로 하여, 지역 고유의 정서와 역사성을 한껏 살려낸 점이 인상 깊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늙고 병든 몸으로 손녀 쑥이를 키우는 꽃님 할망이 있다. 그녀는 제주의 해풍처럼 거칠면서도 단단하고, 화산석처럼 검지만 뜨겁고 견고한 삶을 살아낸 여성의 상징이다. 쑥이는 그런 할망의 품 안에서 하루하루를 배우고 자란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세대 간의 돌봄을 넘어, 삶의 지혜와 정서, 문화가 전승되는 ‘이야기’의 본질을 품고 있다. 비록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과 자연, 가족과 공동체를 잇는 이 고리들은 여전히 견고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돌할망’의 존재다. 그녀는 이야기에 단순히 등장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자연과 전설, 여성성과 돌의 상징성을 응축한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돌할망은 말없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수천 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길냥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생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을 잇는 다리가 된다. 이처럼 ‘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무게와 기억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전생 카메라’라는 독창적인 장치는 어린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면서도, 인간의 기억과 이야기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든다. 찰칵! 찰칵! 소리를 내며 찍히는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수많은 생의 단면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조각들이다. 이 과거는 과거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삶을 해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이를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자신이 속한 가족, 지역, 역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질문을 품고,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제주의 전통 혼례 풍경, 섬세한 자수와 같은 여성 문화를 사실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을 유도한다. 제주 방언, 민속놀이, 해녀 문화 등의 요소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으며,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독자 스스로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전통은 낡고 먼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일깨운다.
무엇보다 이 동화는 가족의 의미를 깊이 되묻는다. 핵가족화,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가족의 공동체성, 정서적 유대, 그리고 헌신의 가치를 꽃님 할망의 삶을 통해 조명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 하나 돌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손녀를 품에 안고 삶을 이어간다. 그 모습은 현대 사회의 차가운 구조 속에서 잊히기 쉬운 사랑과 연대의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어린이 독자들은 쑥이의 눈을 통해, 말없는 사랑과 묵묵한 헌신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 감정인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찰칵! 찰칵! 이야기 돌할망』은 결국, 제주라는 특정한 지역의 색채와 정서를 기반으로 하되, 그 안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관계, 삶의 의미를 따뜻하게 전달하는 보석 같은 작품이다. 제주 바다처럼 깊고 투명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민과 사랑, 기억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혼인지의 전설처럼, 이 동화 역시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삶의 순간순간을 비추는 따뜻한 빛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