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해리 포터는 ‘여성 영웅’이고,
원더우먼은 ‘남성 영웅’일까?
여성 영웅과 남성 영웅의 차이를 비교하기 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점은 둘을 나누는 기준은 성별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여성이 ‘남성 영웅(hero)’일 수도 있고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영웅(heroine)’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주인공의 성별이 아니라, 그 서사의 젠더적 성격이다. 저자는 명료하게 정리한다. “‘여성 영웅의 여정’은 단순히 여성이 수행하는 ‘남성 영웅의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원더우먼은 영화에서 적과 홀로 맞서고, 연인을 잃고, 결말에서 혼자가 되는 전형적인 ‘남성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해리 포터는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성취와 영광을 나누는 ‘여성 영웅’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성 영웅의 여정은 주인공이 여성인 서사 구조가 아니라, 그 안의 이야기와 주제에 연대와 위안, 도움이라는 비트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서사 구조이다.
혼자인 남성 영웅 VS 함께하는 여성 영웅
여성 영웅의 여정을 다섯 가지 핵심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남성 영웅의 여정과 비교해보면, 여성 영웅의 여정이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목적: 남성 영웅은 온라인게임의 퀘스트처럼 적을 이기거나 보물을 찾는 데 집중하지만, 여성 영웅은 자신이 잃어버린 누군가와 재결합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리스 신화에서 빼앗긴 딸을 되찾으려는 데메테르의 여정이 바로 여성 영웅의 것이다.
접근방식: 남성 영웅은 대부분의 경우 공세적으로 행동하고 상대를 물리쳐서 승리를 얻는다. 여성 영웅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기술과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잘 활용해서 목표를 이룬다. 해리 포터는 혼자 맞서지 않고 친구들에게 중요한 싸움을 맡긴다.
힘: 남성 영웅은 목표를 혼자 힘으로 달성해야 한다.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약하다는 징표다. 여성 영웅은 그 반대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힘의 징표다. 더 많은 동반자와 연결될수록 그녀는 더 강해진다. 〈트와일라잇〉에서 주인공 벨라는 착한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 무리에게 도움을 받는다.
권력: 남성 영웅이 가장 강력할 때 그는 혼자다. 그가 돋보이는 순간은 다른 사람에 대해 지적이나 육체적인 우월성을 보여줄 때다. 반면 여성 영웅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들은 혼자 있을 때 약해지고, 같이 있을 때 강해진다.
결말: 남성 영웅은 목표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기에 고독과 상실감이 남는 ‘달콤씁쓸한’ 결말로 끝나기 쉽다. 반면 여성 영웅은 친구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안전이 계속되리라는 암시와 함께 해피엔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는 소중한 존재를 희생해 목적을 이루고 홀로 은둔한다. 그 후속작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어벤져스는 함께 힘을 모아 죽은 이들을 되살리며,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왜 여성 영웅의 여정은 평가절하되는가
그리고 그 해악은 무엇인가
앞에서 확인했듯이 여성 영웅의 여정은 연결, 연대와 통합, 도움을 요청함, 도움을 주기, 성취의 나눔 같은 요소를 강조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남성 영웅의 여정이라는 우산 아래에서는 약하고, 비효율적이고, 단독 성취의 실패로(심지어 가끔은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남성 영웅 여정은 단독 행위, 자기희생, 결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행위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 영웅의 여정을 담은 작품들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연약하거나, 나약하다고 여겨진다. 이 여정에 집중하는 장르들(로맨스, 코미디, 멜로드라마, 코지 미스터리 등)은 대부분 여성이 쓰고 소비하는데, 높은 대중적 인기에도 비평적으로는 무시당하고 있다. 사실, 조지프 캠벨이 제시한 이래 ‘남성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만이 유일한 여정(기본 서사 구조)으로 인정받아 학습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여성 영웅의 여정(Heroine’s Journey)’은 무시를 넘어서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다.
이런 평가절하는 서사의 세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사의 주제와 메시지는 현실에 영향을 준다. 오랫동안 남성 영웅의 여정이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여겨지고 그런 여정이 주류를 차지한 결과, 우리 문화에서는 ‘혼자 가서 스스로 해내는 것’은 영광스럽고 바람직한 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연약하거나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남성들이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싶어 하면, 즉 의사소통, 접촉, 혹은 감정적인 공명을 통한 연결을 추구하면 비난당하는 세상을 만들어낸 결과를 모두 함께 겪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이 연대와 협력에 능숙하고,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각자도생하고 고립되어 있는 것은 두 집단이 즐겨 받아들이는 서사의 차이에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스토리 창작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
첫 번째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여정들은 이야기를 위한 뼈대이지, 생물학적으로 이분법적인 행동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남성 영웅을 오직 남자로, 혹은 여성 영웅을 오직 여자로 설정하고서 역할을 나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여성과 남성을 그리는 방식은, 여성과 남성이 인생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형성한다. 이를테면 남성은 혼자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길 때 빛난다거나, 여성은 집단 속에 있을 때 가치가 있고 좋은 가족을 꾸릴 때 성공한다고 그리는 것은, 해로운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 독자나 작가들이 어느 한 여정을 다른 여정보다 더 좋아하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러는 어느 쪽 서사를 사용하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화 전체가 하나의 여정을 다른 하나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일이다. 남성 영웅의 여정이 여성 영웅의 여정보다 우월하다고 사회가 ‘도덕적’ 판단을 수행할 때, 이것은 어떤 가치를 더 선호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만약 남성 영웅의 여정이 ‘강함’을 정의하게 된다면, 문화 전체에서 강하다는 건 폭력적이고, 혼자이고, 물리적으로 강력한 걸 의미하게 될 것이다.
작가들은 ‘서사의 관리인’으로서 작품을 통해 어떤 시대정신적 메시지를 보낼지 유의해야 한다.
우주를 같이 여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껏 무시당한 이야기들을 되살려내고, 다시 알리고, 그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고, 그 이야기들이 우리와 우리의 소설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열심히 알려야 한다. 그때까지는 여성 영웅의 여정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애정, 그리고 옹호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써야 한다고 느꼈다. -에필로그
여성 영웅의 여정과 남성 영웅의 여정 둘 다를 서사 구조로 고려할 때 창작자들은 더 나은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고, 독자와 청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자립이라는 남성 영웅의 힘과, 위임과 도움을 청하는 여성 영웅의 힘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면 전인격적 캐릭터들을 만들 수 있고 작가 자신과 그것을 읽는 독자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요점은 우리에게는 두 영웅의 여정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여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여정 또한 빛나며, 어쩌면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여정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남성 영웅의 서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는 우리에게 여성 영웅의 여정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함께 연결되어 성장하는 방식, 서로를 지탱하고 나아가는 힘. 이제, 이 이야기를 함께 써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