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 도시, 귀스타프 에펠과 프랑수아 뤼드의 고향, 디종
프랑수아 뤼드 광장에는 생뚱맞지만 알록달록한 카로셀(회전목마)이 돌아간다.
분수대 위 남자의 조각상(바루자이)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독특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 듯하다.
자세히 보면 다 보인다. 광장의 카로셀과 동상에는 디종인들의 자부심이 어려 있다는 것을.
디종에서는 와인은 물론이고 디종의 간판인 머스터드부터 에스카르고, 뵈프 부르기뇽, 코쿠뱅, 트러플과 치즈까지 진정한 프랑스의 미식을 경험할 수 있다. 또 부엉이 트레일을 따라가다 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어느새 중세의 세트장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복수극을 펼친 부르고뉴 공국의 120년 역사를 들여다보고 백년전쟁의 중심인물들과 잔 다르크를, 북유럽 사실주의 플랑드르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부르고뉴의 심장, 본
백년전쟁을 마치며 니콜라 롤랭이 빈민층을 위해 지은 자선 병원, ‘오스피스 드 본’
지금은 유적의 명성보다 와인 경매로 이름을 떨치는 곳
〈재상 니콜라 롤랭의 성모〉 그림의 비밀은 화가의 밑그림에 묻힌 채 채색으로 덮여버렸다.
작은 도시 본의 중세 시대 성벽과 자갈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노트르담 성당 바로 옆에 가족 경영으로 뿌리 깊은 네고시앙 조제프 드루앵의 와인 저장고가 있다. 한때는 부르고뉴 공국의 의회로 사용했고 부르고뉴 공국과 중세 수도사들의 유산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이곳에는 실제 노트르담 성당 수도사들이 와인 양조를 할 때 사용했던 거대한 목조 와인 프레스를 보관하고 있다.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면 석회암 돌벽으로 만들어진 유서 깊은 지하 저장고가 나온다. 건물의 지하실이라기보다는 본 도시 전체의 지하실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부르고뉴 포도밭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 십자가를 배경으로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로마네 콩티 포도밭과 와인에는
18세기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이자 권력자였던 마담 퐁파두르와 얽힌 재미난 사연이 있다.
포도밭에 불어오는 오월의 봄바람과 경사진 언덕에 비치는 햇살, 오감을 자극하는 냄새는 부르고뉴를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인다. 따사로운 햇볕에 열매가 영글고 주저리주저리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이곳은 단풍으로 황금 물결을 이룬다. 수확이 끝난 들판의 포도밭은 붓으로 점을 찍어 그린 도화지 속 모자이크처럼 색색이 물들어 자연이 그려 낸 작품을 보는 듯하다. 코트 도르의 포도밭엔 그 옛날 중세 수도사들의 땅을 일군 수고와 연구 그리고 피, 땀, 눈물의 열매가 맺혀 있다.
아는 만큼 누려보자, 부르고뉴 사용 설명서
부르고뉴 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와인 외에도 감각의 효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만한 여행의 조건과 이유가 산재한 곳이다.
부르고뉴의 미식 철학에 따르면 로컬 재료와 특산품 사용은 물론이고 부르고뉴 전통 기법과 규칙에 따라 조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는 프랑스의 미식 문화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세계 문화 유산 도시 디종에서는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유적들을 돌아볼 수 있다. 프랑수아 뤼드 광장, 디종 노트르담 성당, 리베라시옹, 부르고뉴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르고뉴 대궁 궁전, 궁전 안의 미술관, 〈모세의 우물〉, 〈발루아 공작들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역사, 문화와 예술을 아우른다.
부르고뉴의 심장 본에 이르면 ‘오스피스 드 본’을 볼 수 있다. 병상과 의료 도구, 사료 전시만 봐도 당시 자선 병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곳곳에 걸린 초기 북유럽 사실주의 작가의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를 더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조제프 드루앵의 지하 와인 저장고도 꼭 들러 보시라.
부르고뉴 여행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 와인이다. 코트 드 뉘는 레드 와인이 유명하고 ‘피노 누아’라는 단일 품종을 사용한다. 화이트 와인은 코트 드 본이 유명하며 ‘샤르도네’라는 단일 품종을 사용한다. 이외에도 가메, 알리고테 등의 품종이 있다. 부르고뉴의 와인 등급 체계는 레지오날, 빌라주, 프르미에 크뤼, 그랑 크뤼 네 등급인데 레지오날에서 그랑 크뤼로 올라갈수록 고가이다. 2018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로마네 콩티 그랑 크뤼 와인이 55만 8000달러로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낙찰되었다.
천정부지로 값이 오르는 부르고뉴 와인이지만, 저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는 팁을 알려준다. 첫째, 낮은 등급인 레지오날 와인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아직은 비인기 마을의 와인을 찾는다. 셋째, 라이징 스타 생산자를 공략한다. 마지막으로 같은 지역의 도멘 와인에 비해 가격 면에서 합리적인 네고시앙의 와인을 찾아본다.
포도빛 바람이 불어오는 부르고뉴의 구성
이 책은 ‘부르고뉴 용어’로 페이지를 연다.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 뽐내기 딱 좋다.
첫째 날, 애틱(attic)을 로망하는 저자는 디종의 다락집 숙소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미식의 도시이자 역사의 도시 부르고뉴에서 합리적으로 와인 구하는 방법과 젊고 유능한 라이징 스타 와이너리와 네고시앙에 관해 설명한다. 또 부르고뉴에서 마시면 좋은 아페리티프(식전주)를 알려주고 미식의 도시인 만큼 프랑스인의 소울 푸드도 소개한다.
둘째 날, 저자 부부는 중세 도시 디종의 문화와 유적 탐방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부엉이 루트를 따라 디종 노트르담 성당에서 검은 성모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리베리시옹 광장에서 식사를 하며 온몸으로 디종의 햇살과 바람과 냄새를 즐긴다. 〈부르고뉴 공작들의 무덤〉을 보러 가기 전 부르고뉴 공국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백년전쟁의 모티프와 120년에 걸친 발루아 가문의 욕심과 복수에 관해 맛깔나게 설명한다.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인 플랑드르의 사실주의 예술가들의 정교한 작품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셋째 날, 레잘 마켓에서 아르망의 할머니 이본느와 미팅하고 다음 날부터 와이너리 기행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설계한다. 이날은 남편과 함께 D974 도로를 달리며 둘만의 부르고뉴의 지리 여행을 한다. 이날 찾은 곳은 오스피스 드 본, 조제프 드루앵의 지하 와인 저장소, 클뤼니 수도원이다.
넷째 날, 샤를마뉴가 어떻게 화이트 와인을 마시게 되었는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본느와 함께 코트 드 본에서 코트 샬로네즈까지 본격적인 와이너리 투어에 나선다. 샤토 드 코르통 앙드레, 도멘 다르뒤, 도멘 장 모니에 에 피스, 샤토 드 샤미레에서 각 와이너리의 역사와 배경에 관해 설명을 듣고 와인을 시음하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다섯째 날은 부르고뉴 와인의 요람이자 레드 와인의 정수인 부조와 본 로마네의 와이너리 투어에 임한다. 클로 드 부조의 포도밭이 직사각형인 이유를 설명하며 샤토 뒤 클로 드 부조, 샤토 드 라 투르, 도멘 미셸 그로에 방문한다. 또 프랑스의 절대 왕정 태양왕 루이 14세가 보르도보다는 부르고뉴 와인을 즐기게 된 사연도 공개한다.
여섯째 날이 되자 이본느의 찬스가 발동되고 드디어 샹볼 뮈지니의 도멘 기슬레인 바르도, 모레 생 드니의 도멘 데 랑브레, 주브리 샹베르탱의 클로드 뒤가에서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위대한 와인 생산자들을 만나 그들이 직접 빚은 와인을 시음하면서 꿈에 그리던 행운의 시간을 보낸다.
일주일의 기행, 오직 신과 함께해야만 갈 수 있다는 부르고뉴의 와이너리에서 여행의 이유이자 시작이었던 주브리 샹베르탱의 클로드 뒤가 선생님이 빚은 브랜디와 마크 드 부르고뉴를 맛보고 달콤한 일정은 끝난다.
책을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부르고뉴에 가고 싶어진다.
책을 읽는 내내 매혹적인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어 안달 날 지경이다.
덧, 여행 내내 저자와 남편의 대화는 책을 읽는 재미와 감동에 깊은 여운과 파장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