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어렵다. 진짜. 그냥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싶은 것뿐인데.”
아이돌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를 덕질로 이끈 건 다정함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우연히 본 비보의 영상. 그 영상 속 멤버들의 모습은 너무나 내가 바라던 친구들 그 자체였다. 서로를 위해주고 실수를 감싸주고,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었다. _96쪽
소설의 주인공은 한수리다. 아이돌 그룹 ‘비스킷 보이즈’, 통칭 ‘비보’를 좋아하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비보’를 큰 무대에 세우려고 팬 투표에 열을 올린다. 은진은 수리의 단짝이자 덕질 동료. 은진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남자 아이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기 그룹인 ‘챔프’. 수리와 은진은 덕질을 통해 우정을 쌓았고 껌딱지처럼 함께 다니는 절친이 되었다.
반 애들 중 아무도 이번 주의 뮤직뱅크 1위가 누구인지 관심 없어 하는 와중에, 스밍만 했어도 챔프가 1위를 했을 거라는 수다를 떨 수 있는 상대? 귀하다. 아무도 비보를 모르는데 공책에 붙인 비보의 스티커를 보고 팬이냐고 넌지시 말 걸어주는 상대? 영혼의 단짝감이다. _ 22~23쪽
한편, 수리와 은진이 다니기 시작한 학원에는 나영이 있었다. 나영은 학원에서 ‘인싸’로 군림하며 텃세를 부린다. 하지만 웬걸. 나영도 알고 보니 ‘비보’의 팬인 것. 아니 그냥 팬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의 네임드 팬 계정 ‘영 비스킷 걸’이었던 것이다. 수리는 그런 나영을 동경하며 가까워진다. 나영이 프레임 이벤트를 직접 개최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스럽다고도 느낀다. 나영은 그런 수리의 호감을 이용하는 듯한데…. 한편 은진과 수리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서로 오해가 쌓이기 시작한다. 아이돌 덕질 활동을 둘러싼 이 세 아이들의 오해와 긴장 상황, 배척과 화해, 그 오묘한 감정선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엄마도… 덕질을 한다고?!
“엄마는 누군가의 팬이면 안 돼?”
누군가를 완전하게 아는 일이 가능할까?
“귀 안에서 나와 엄마의 체온이, 다르지만 비슷한 노래가 뒤섞였다.”
소설에서 또 다른 큰 줄기는 한수리와 엄마의 관계다. 엄마는 올해 초 회사를 그만뒀다. 엄마의 직업은 노무사였다. 수리에게 엄마의 직업은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다. 매일 아침 정장 차림의 멋진 모습으로 출근하는 정의의 사도. 잡지 인터뷰에도 실린 엄마. 근사한 엄마. 수리의 친구들은 입을 모아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후 엄마는 부쩍 짜증이 늘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수리는 의아해한다. 어느 날엔 수리가 ‘비보’를 위해 팬 투표를 하려던 찰나, 모아두었던 ‘별’이 다 사라졌다. 알고 보니 엄마가 사용했던 것인데, 수리는 덕질하는 엄마를 놀라워한다. 하물며 이한한이라니. 트로트 가수 이한한. 할머니들의 아이돌. 수리가 느끼기에 유독 이한한의 팬들은 매너 없는 활동으로 물을 흐리고 있다.
“덕밍아웃?”
“그래. 엄마는 이한한 팬이야. 앞으론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덕질할 거니 그렇게 알아. 수리 너도 엄마한테 이한한 험담하지 마.” _32쪽
수리가 은진과 나영 사이 갈등 상황에서 곤혹스러움과 찝찝함을 느끼는 가운데, 집에서는 더욱 소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문득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엄마는 왜 이한한을 좋아하게 됐을까? 수리에게 다정함이 필요했을 때 비보가 찾아왔던 것처럼, 엄마에게도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러는 와중에 엄마에 대한 수리의 태도는 점점 달라지는데….
유튜브로 플래카드 만드는 법을 척척 검색하는 엄마. 컴퓨터로 디자인한 것보다 더 반듯하게 글씨를 쓰는 엄마. 순식간에 플래카드 하나를 뚝딱 만들더니 장식을 시작한 엄마. 내가 몰랐던 엄마. 하지만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엄마, 왜 이렇게 잘 만들어?” _179쪽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혹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까.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에 대해서는? 아니,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엄마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해란 무엇일까. 소설 속 한수리는 자신이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차츰 깨달아 간다. 엄마라는 역할 혹은 무대 위 엄마만이 전부라고 착각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내 엄마라는 한 존재에 대해서 의식해 나간다. 그리하여 “사람의 관계란, 착각이란 구멍에 푹푹 빠져가며 서로의 모르던 모습을 발견해 가며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189쪽)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최애 덕질을 통해서 이만큼 삶의 통찰을 벼려낸 청소년 소설이 얼마나 있을까. 아이돌이라는 흥미를 끄는 소재를 활용해 작가는 관계에 대한 탁월한 시선을 보여준다. 『오늘만 최애 변경』이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널리 닿아야 하는 이유다.